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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와 역사
11/30/2011 08:11 댓글(0)   |  추천(0)

맥도날드와 역사 / 유리알 유희


역사의 참 뜻과 가장 중요한 의의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데 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의 해석이 올바르고 객관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역사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가의 주관에 따라 씌어진 소설과 같은 허구의 창작품인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 해석에도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므로,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주지 못하고 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역사 해석에서 주관성과 오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영국의 역사학자 카(Edward Hallett Carr ; 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자에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게 될 사실(Fact of the past), 또는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다시 해석하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실(자료)을 선택하고, 그러한 과거의 사실을 현재적 관점에서 다시 해석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카에 따르면 역사가가 편견을 가지고 취사선택하는 역사적 사실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고기와 같다고 하였다. 역사가가 잡는 고기는 역사가가 어느 바다를 택하는가, 잡는 방식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무슨 고기를 잡을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가의 자의에 따라 선택한 역사적 사실에 따라 해석이 이루어지므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역사가를 연구해야 하며,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역사가에 따라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모든 역사가의 역사적 해석은 보편타당하여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하며, 동일한 조건에서 역사가 되풀이 된다면 이미 형성된 역사적 해석, 또는 가설에 따라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해석과 이론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역사는 과학의 속성과 유사하다 하겠다.


가령 경제학에서는 소비변동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가격, 소득, 기호, 인구의 구성, 계절요인 등 다수의 독립변수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연구자의 임의에 따라 선택하고 각 변수가 소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게 된다. 모든 독립변수를 고려할 수 없는 관계로 연구자의 판단에 따라 중요한 변수 몇 개를 골라, 그것들이 소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게 되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모형(Model)을 어떻게 결정할지도 연구자의 자의에 따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급적 보편타당하고 예측가능성이 있는 이론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도출된 이론은 유사한 상황의 현실적인 자료의 의미를 분석하는데 역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때 해당 이론이 특정의 소비현상을 잘 설명하지 못할 경우, 연구자는 실증적 자료를 바꾸거나 이론의 모형 자체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귀납과 연역의 사고과정을 되풀이 하며 거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학의 연구과정은 역사가가 역사적 자료를 선택하고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방법과 동일한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의 원인(독립변수)을 다양화해야 하지만, 동시에 단순화를 통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카는 주장하였는데, 이것 역시 양자의 유사점이다. 또한 경제학(사회과학)이나 역사학이나 연구방법에서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보편타당성과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의 차원에서 양자는 유사하다 하겠다.


역사해석에서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발적으로 발생했던 낱낱의 사실에서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카는 주장하였다. 역사적 사건에는 장기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형성되었던 동태적인 원인(ever-developing events)들이 반드시 있다 하였다. 매 역사는 이렇게 필연적인 원인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사에서 우연을 가정해 보는 것은 큰 잘못이라 했다. 또한 역사해석의 불편부당을 위해 주관적 잣대가 될 수밖에 없는 도덕의 기준을 역사에서 제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상에서의 역사의 성격과 의미를 몇 가지 역사적 사례와 현실생활에서 응용해 볼 수 있다. 역사에 관한 분쟁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둘러싸고 역사해석의 전제가 크게 차이가 나는 국가 간, 또는 사람들 간에 더욱 뜨겁다.


일본의 식민지통치 시대 때 일본인과 관변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식민사관과 이에 대응했던 애국적 민족사관의 대립은 가장 좋은 예이다. 또한 한일 간에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분쟁도 또 다른 예이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한민족의 역사적 타율성과 종속성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었으며, 한국의 근대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일본 측의 주장이다. 이러한 일본 측의 역사해석은 카가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바다에서 그들이 임의로 잡아 올린 고기를 바탕으로 바다 전체를 설명하는 허구이자 소설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역사연구의 방식과 자료선택 상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나, 역사가 그렇게 씌어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속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한국의 교포들은 고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함께 한국의 최근세사와 정치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벌어지는 집들이와 술자리에서는 의례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 화제가 모아진다. 교포들 간에는 살아왔던 사회적 환경이 천양지차로 다르고 출신지역도 다른 것이 대부분이다. 술이 거나하게 되면 모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책을 입으로 쓰게 된다. 그러면 의견차이로 술자리의 분위기는 격앙되고 파행으로 모임이 끝나기 일쑤이다. 토론의 단골 주제는 친일잔재의 청산문제와 이승만 정권, 박대통령의 경제적 발전에 대한 공과,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와 혼란, 광주 민주화사건의 성격 등이다. 토론의 자리에는 소위 보수 꼴통도 있고, 특정 젊은이들을 능가하는 과격하고 정의로운 좌파도 끼여 있다. 경상도 사람도 있고, 전라도 사람도 있다. 눈만 멀뚱거리는 강원도 사람도 있다.


카는 역사가의 주관에 의해 역사해석이 왜곡될 여지가 있지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역사이론이 타당치 않을 경우 역사적 자료를 바꾸고, 역사해석의 틀도 바꾸어야 한다. 역사는 소설책 쓰듯이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역사해석의 내용은 보편타당하고 예측가능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 주위에 사람들이 고리짝 때의 자료와 선입견으로 한국의 역사를 논하고 애국자연하고 있는 것이 심히 안타깝다. 우파에게서도 좌파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느낌이다. 최근 엘에이 코리아타운의 맥도날드에는 아침마다 한국 남자들이 모여 정치를 논하다 고성으로 싸움박질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기피한다고 하니 여간 우습지도 않은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카의 역사이론을 조금이라도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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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학자  E.H. Carr (1892-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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