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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불교이해
10/09/2011 13:10 댓글(0)   |  추천(2)

그리스도교의 불교이해 / 이찬수


1.그리스도교에서는 불교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스도교에서는 불교를 어떻게 보는가? 간단하게 대답하기 힘든 물음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동·서양 종교의 양대 산맥인 불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가 워낙 다양해, 무엇을 일러 불교라 하고 무엇을 일러 그리스도교라 할 것인지조차 규정하기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불교라 말하지만, 초기불교의 모습과 현대불교의 모습이 다르고, 상좌불교와 대승불교가 다르며, 선불교와 정토불교가 다르다. 한편에서 보면 철저한 무신론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신론일 수도 있는 것이 불교이며, ‘엘리트’ 선승의 신앙과 대중적 민간신앙이 이질적일 만큼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불교인 까닭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역시 세련된 신학자와 일반 신자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어디까지를 그리스도교라고 규정해야 할지 기준을 정하기 힘들다. 그런데다가 그리스도교 신자 개개인의 불교에 대한 이해 자체도 극단적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아직 소수이기는 하지만, 불교에서 친근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동일한 종교경험에 기초하고 있다고까지 자신 있게 규정하는가 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른바 ‘우상숭배’의 전형으로 불교를 지목하기도 한다. 게다가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속한다고 하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등 교파에 따라서도 이른바 ‘타종교’에 대한 자세가 같지만은 않다.1) 문화적인 차이는 물론 심지어 교리적인 차이마저 있으며, 각 교파의 신학자들끼리도 입장 차이가 제법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마당에 ‘그리스도교에서 보는 불교’라는 주제로 글을 풀어나가는 일은 접근조차 하기 힘든 험산준령을 속속들이 살피며 종주하는 일과도 같다. 이 글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여 한국 그리스도교 안에 있으면서 불교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은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한 사람인 고(故) 변선환(邊鮮煥) 목사(1927∼1994)의 불교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변선환은 신학자이자 목사이지만, 다른 종교인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펼치면서 한국 종교신학의 방향을 새로 잡아가는 데 족적이 큰 인물이다. 특히 불자들과의 친분이 두터웠으며, 그의 종교신학적 시각에도 불교적 논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불교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그의 신학을 정리해 보면, 그리스도인이 불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그 그리스도교적 기초도 알 수 있게 된다.2) 이 글에서는 그의 시각 내지는 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은 불교를 어떻게 ‘보는지’ 그 일단을 가늠해보고, ‘그리스도교에서 보는 불교’라는 주제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문으로 삼고자 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그리스도교인은 불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 적절한 시각을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물론 변선환의 불교관에 초점을 둔 이 글은 그리스도교 가운데서도 비교적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해준다고 하겠다.

2. 변선환의 불교이해 과정

변선환이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 신학을 전개해나갈 때 늘 염두에 두었으며, 가장 큰 자극을 받았던 것은 불교이다. 그의 신학 안에서 보건대 불교는 그의 실존과 상관 없는 단순한 ‘타’종교가 아니다. 그는 불교를 가능한 한 불교로 남겨두고자 하며, 그리스도교적 잣대로 함부로 재려 하지 않는다. 불교적 가치를 살리고자 한다. 그는 불교를 보면서 더 그리스도인다워진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그에게 그리스도교를 더 그리스도교답게 만들어주는 “불가결의 보충”(야스퍼스)이다. 이런 시각이 변선환의 신학과 불교관의 기초에 놓여 있다. 그는 어떤 궤적을 따라 이러한 불교관을 갖게 되었는가? 그가 보는 불교는 어떤 것인가?

변선환은 고향인 평양 외항 진남포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부터 이미 동양의 정신세계에 친숙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3) 그러다가 미국 드루 대학교 유학시절(1962∼63, 1966∼67), 드루에 초청교수로 와있던 바젤대학의 프리츠 부리(F. Buri)를 통해 야스퍼스의 철학을 만나면서 대승불교가 보이기 시작했고, 바젤 유학시절(1971∼75)에는 부리 교수와 함께 선불교 고전들을 읽으면서 “동양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실존적으로 실감”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나는 좋은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 불교를 배우고, 좋은 불교도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공부하고 있다.”는 군데르트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늘 자문한 것은 “불교로 특징화할 수 있는 동양이라는 문화적 풍토 속에서 기독교 신학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4)

그 후 변선환은 불교와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늘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놓지 않았다. “아시아의 기독교가 아시아화되어야 한다는 지상과제 앞에서 동양의 신비종교가 열어준 끝없는 정적 속에서 명상에 침잠하고 있는 불교도 형제들과의 열려진 대화가 가장 절실한 문제가 된다고 본다.”5)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더욱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되는 데 불교가 좋은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바젤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일차적인 결실을 맺게 된다(1975). 그는 학위논문에서 자신과 동시대 사람인 일본의 신학자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1932∼)의 신학을 소개한다. 야기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의 절대무(絶對無)에서 신학적 근거를 보는, 이른바 ‘불교적 신학자’라고 할 만한 이이다. 학위논문에서 변선환은 야기의 신학을 정리하며 소개하되, 결국은 그의 지도교수인 부리의 시각에서 비판하는 작업을 한다.

변선환은 “인간 실존(신앙)의 보편적 가능 근거는 공(空)이나 절대무라는 비행접시에 있지 않고 인간 실존의 자기 이해에 있으며, 이 자기 실존은 내 구체적인 생의 상황, 곧 기독교 전통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6) 그 자신이 “그리스도 속에서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을 찾은”7)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가운데, 인간 실존을 추상화시키지 않으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것은 공(空)이라는 불교적 실재로는 모순으로 가득찬 역사적 현실을 적절히 설명해내기 힘들다는, 불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가 니시다에 근거를 둔 야기의 ‘장소’ 개념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그는 “장소/근저가 인간 실존에 선행한다.”고 보는 야기의 입장이 “인간 실존의 무제약적 자유와 책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인간 실존을 추상화시킨다고 간주한다.

그러면서 “무제약적 책임성이라는 이름밖에 천하 인간이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8)고 강조한다. 모순적 현실을 극복해내는 무제약적 책임자로서의 자각 위에서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는, 이른바 ‘실존 그리스도론’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상황 안에 처해 있는 그리스도교적 실존을 중시하면서 1970년대의 변선환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에서처럼 ‘그리스도의 궁극성’을 밝히고자 했던 ‘정통적’ 의미의 신학자였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그는 불교와의 열린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탈서구화를 이루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불교는 그에게 아직까지 그리스도교를 풍요롭게 해주는 일종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가 그의 신학의 ‘내용’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이다.

3.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불가결의 보충’

불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편견을 완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했지만, 변선환의 불교관은 이기영의 불교-기독교의 대화론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는 〈해방 후 기독교와 불교의 수용형태〉(1978)에서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물론 그는 오랫동안 서경수, 김삼룡, 유병덕 등 불교 또는 원불교 학자들과 교류했지만, 그의 불교 이해의 폭은 이기영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 글도 이기영과의 대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기영의 그리스도교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가령 “그(이기영)는 정신적인 것과 인격적인 것, 존재론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이 반드시 대립적인 것이 아니고 상호 보충하여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종교 속에 두 요소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데까지는 논리를 발전시켜 나가지 못했다.”9)고 그는 본다.

이기영을 비롯 불교권 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인격 개념을 여전히 이원론적 시각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만 오해하고 있기도 하지만, 변선환에 의하면 그것을 넘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적 신관의 특징인 인격은 대승불교적인 시각에서만 보면 아직 불교적 진리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변선환은 일단 동의한다.

‘無理之理’라는 절대모순의 자기동일의 경지, 절대무로서의 인식의 형이상학에서 본다면, 인격존재로서의 신에는 아직 그의 의지와 선택의 대상으로서 거기에 대립하고 있는 이원론적 구별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나와 타자,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이원성이 극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신은 참된 의미에서 절대자가 아니라고 보겠다. 一心의 입장에서 보면, 인격성은 다만 절대무의 가면으로 보일 뿐이겠다.10)

그러나 변선환에 의하면 이것은 오해이다. 그는 본심을 이렇게 밝힌다.

인격 개념을 무의 한정과 특수화라고만 한정시켜서 이해하지 말고, 존재 자체를 근원적으로 인격적인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을 초월한 신(God above God)’으로서의 존재 자체의 신이 인격적인 살아 계신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처럼, 인격과 순수일자인 존재의 초월적 근거는 다함께 상대적 이원성을 초월한 것이며, 분할 불가능한 것이다.

인격 존재로서의 신 개념은 절대무가 동양적 사유의 근저에 있듯이, 기독교 서구에 있어서 의미 있는 근원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도와 달리 기독교는 초월자의 가장 깊은 핵, 존재의 핵에서 인격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동서의 두 종교는 열려진 대화를 통하여 서로 새로운 사유방법을 익혀나가야 할 것이다.11)

변선환이 하고 싶은 말은 존재와 인격·윤리는 상호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 절대무의 차원에서 그리스도교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신의 인격 개념을 존재 자체의 근원적 성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리스도교가 불교를 오해해선 안 되듯이, 불교도 마찬가지라는 충고가 들어있는 셈이다. 신의 인격 개념은 불교적 시각에서 비판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핵심으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선환은 늘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교를 살리고자 한다.

잘 보면 그리스도교의 인격 개념이 그다지 불교와 상충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인격’ 개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변선환이 야스퍼스의 말을 빌려 사용하는 데 따르면, 불교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불가결의 보충” 관계에 있다. 보충되는 그 지점에서 이들은 서로 만난다는 뜻이며, 서로가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는 관계에 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사랑하면서의 투쟁”(야스퍼스)의 상대로 보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사랑하면서의 투쟁’은 종교체험의 표현인 로고스, 곧 도그마 사이의 알력이 아니라, 종교의 근원적인 것을 얼마나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근원적인 물음 사이의 알력일 것이다. 일원론적인 불교가 우수한 종교인가 이원론적인 기독교가 우월한 종교인가를 가름하는 유일한 표준은 도그마에 있지 않고 프락시스 곧 사랑의 실천에 있다. 종교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사랑이다.12)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서로를 보충해준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양자택일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는 말한다: “불교냐 기독교냐는 물음,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서구적인 너무나도 서구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겸손한 길손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의 논리를 배우며 상호보완의 길을 택하여야 할 것이다.”13) 그는 구체적인 예를 이렇게 든다.

기독교 행동주의자들의 예언자적 정신은 불교의 명상체험에서 신비체험의 지혜를 배우며, 에고(ego)에서 벗어나는 초탈의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사랑행은 끝없이 에고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무의 체험을 통해 세계를 향하여 나서는 대승불교의 보살도주의에 나타난 대자비심에서 배우며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14)

불교는 그리스도교를 보충해주는 불가결한 상대라고 보는 자세가 잘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불자는 그리스도교를 불교에 대한 불가결의 보충으로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서로를 좀더 총체적으로 보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배우는 대화의 길을 가자는 제안인 것이다.15)

그는 말한다. “기독교와 불교는 앞으로 한국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사랑의 휴머니즘의 영역에서 사이 없는 대화와 협동을 이룩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인 노력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16) 이러한 미래지향적 제안에는 불교적 도전이 반영되어 있고, 이 도전이 그의 신학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주요 자극제로 작용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비교적 진보적인 신학자들 및 신자들의 불교에 대한 입장을 앞서서 대변해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되어간 그의 신학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불교와 같은 이른바 타종교의 도전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모습은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 드러낼 수 있겠는지 변선환의 신학이 가장 적절한 예일 듯 싶다.

4. 불교를 수용해낸 신학의 모습 : 타종교의 신학

한국의 신학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시피, 변선환 신학의 핵심은 ‘종교신학’과 ‘해방적 민중신학’이 결합된 ‘해방적 종교신학’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는 해방적 종교신학의 차원에서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한다. 그의 신학은 아시아적 종교성의 기초 위에서 한국인 및 아시아인의 빈곤과 고난에 참여하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실천적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다.

다양한 종교들은 인간 해방의 실천에서 만나며, 그 만남 및 인간 해방의 기초를 정치적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 아닌, 아시아적 종교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 러한 그의 사유를 잘 보여주는 논문이 〈타종교와 신학〉(1984)이다. 제목은 논문을 의뢰한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타종교’와 ‘신학’으로 되어 있지만, 그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타종교’의 ‘신학’이다. 그에 의하면, “타종교의 신학”이란 “타종교를 주체로 하는 신학”이다.

특별히 그는 아시아의 종교적 현실을 그리스도교의 내부로까지 받아들이면서, 그로 인해 달라졌고, 또 달라질 수밖에 없는 한국 신학을 탐구하며 정립하고자 한다. 신학이라면 응당 그리스도교적 주체성 위에서 성립된 것이겠으나, 그는 서구 신학에의 종속성을 극복하고 아시아적 신학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아시아적 주체성이란 서구적 주체성이라는 ‘정통’의 길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벗어버린 ‘비정통’의 길을 갈 때 성립되는 주체성이다. 서양 신학의 포로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종교성과 빈곤의 문제를 주제이자 주체로 하는 신학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아시아 신학자들은 아시아적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신학을 형성해야 한다는 과제를 위하여 기독교 신앙의 비정통적인 아시아적 해석학을 지향하려는 모험에 나서야 하게 되었다.17)

그리스도교 신학이 아시아에서도 정말 살아 있고자 한다면, 스스로 비정통의 길을 가야 한다.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적 풍토 안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들어가고, 아시아인의 빈곤과 더불어 살면서, 빈곤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신학, 앞에서 말한 대로 ‘해방적 종교신학’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를 주체로 하고서 다른 종교를 이분법적으로 대상화하고 사물화할 줄만 알았던 서양의 이른바 ‘정통’ 신학과는 다른, 다양한 종교들이 결코 대상화할 수 없도록 녹아 있는 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해석학적 ‘비정통’의 길이다. 이러한 비정통적 해석학에 충실할 때에야 그리스도교는 오랜 동안의 정통의 길을 이어간다는 것이 그의 아시아적 해석학의 입장이다.

말하자면, 타종교를 사물적으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입장이 타종교 안에서 부정될 때 타종교를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그렇게 얻어진 새로운 이해야말로 그리스도교적 새로운 질서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피에리스(A. Pieris)의 시각을 빌려 “타종교의 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타종교의 신학은 타종교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를 논하는 그리스도론도 아니고, 타종교가 어떻게 신을 알고 있는가를 밝히려고 하는 God-talk나 God’s-talk로서의 신-학(theo-logy)도 아니며, 새 휴머니티의 회복을 위한 아시아인들의 민중해방운동을 촉발시키는 구원의 신비, 해방의 신비를 밝히는 구원론에 근거되어야 한다.18)

타종교의 신학은 타종교 안에서 그리스도교와 유사한 사상을 찾아내려는 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구원론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해방을 지향하는, 일종의 해방신학이다. 그리스도교는 타종교의 인간 구원론, 타종교의 해방적 전통과 만나서, 인간의 구원을 중시하는 신학을 해야 한다. 이것이 타종교 신학의 요체이기도 하다. 타종교와의 이념적 토론에 머물지 말고, 타종교가 어루만져온 인간의 고통, 이루어온 인간의 해방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의 타종교란 신학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신학을 신학되게 해주는 주체이기도 하다고 본다. 그에게 타종교는 그저 ‘다른 것(他)’으로 대상화되지 않는다. 이미 그것이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종교는 신학의 중심 내용이 된다.

타종교는 서구 신학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신학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목적이며 신학의 객체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가 되게 된다.19)

‘모두가 이런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마도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 바라는 변선환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른바 타종교인들도 그리스도교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바람을 가지고 서로 함께 만나 대화하고 명상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진정한 종교간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해나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한국 기독교 100년 기념 신학자대회 한국 신학 심포지엄”(1984)에서 토로한 소망은 그러한 심정을 잘 반영해준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우리들이 책을 통해서 서로 배우고 서로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하는, 말하자면 경전을 기초로 한 그와 같은 대화를 넘어서, ‘종교경험’, 이 속에서 우리 서로 같이 만나자, 그래서 같이 기도하고 같이 명상하고 같이 참선하고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하지 않는 한 그건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이런 걸 내가 마지막 카드로 내놀려고 그러는 거야.20)

도그마적 원리보다는 인간의 실존적 구도심 자체를 중시하면서 그곳에서 신학의 핵심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선환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목적을 이른바 타종교 대상적 ‘정통신학’으로부터 신학을 해방시킴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곳에서 찾는다고 할 수 있다.

5. 불교를 긍정하는 신학적 근거 : 신 중심적 다원주의

그가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자세는 어떤 신학적 근거 위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의 ‘신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타종교의 신학”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신 중심적 다원주의 신학”과 통한다. 이는 사실상 힉(J.Hick)이나 니터(P.F.Knitter), 파니카(R.Panikkar)나 피에리스(A.Pieris) 같은 신학자들의 견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변선환도 이들에게 배우면서, 그리스도교에만 고유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그리스도론보다는, 이 그리스도론을 포괄하는 신론에 무게 중심을 두고자 했다. 그는 특별히 신 중심적 혹은 실재 중심적 신학을 견지했다. 힉이 말하듯이, “여러 신앙들의 우주의 중심은 그리스도교나 다른 어떤 종교가 아니라, 신(God)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모든 종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21) 이런 입장을 이어받아 변선환은 말한다: “아시아의 기독교는 과감하게 서구 신학이라는 프톨레미우스적 시각(지구 중심)에서 아시아 신학의 관점(태양 중심)에로의 급격한 전환이 요청되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우리는 아주 새로운 신학의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22)

여기서 변선환이 말하는 신(태양)이란 그리스도교 안에서 교리화한 신이 아니라, 힉이 말하는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 영원한 일자(Eternal One)에 가까운 개념이다. 힉에 의하면, 신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독점될 수 없는 초월적 실재이다. 힌두교의 ‘니르구나 브라흐만’처럼, 아무런 속성이 부여되지 않는 순수실재, 칸트의 ‘물자체’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다양한 문화적 풍토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즉 ‘사구나 브라흐만’(쉬바 혹은 이쉬바라, 야훼, 알라, 道 등)과 같은 현상세계의 모습으로 알려진다는 것이다.

변선환도 이러한 힉의 입장에 동의하며 신을 ‘궁극적 실재’의 차원에서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 실재가 ‘하나’라는 수량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전형적인 인격신론을 재고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이기영의 견해를 빌려 신이 ‘한 분’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의 수량적 집착을 비판한다.

기독교의 신(Deus)과 오직 하나뿐인 님(unum Deum)은 산스크리트어 데바(deva)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기독교는 deva를 대문자 Deus로 쓰면서 객관적, 인격적 실재로 이해하고 ‘하나’를 수량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본래 ‘오직 하나의 님’은 광대한 포괄성이며, 《대승기신론》이 말하는 초월적, 내재적인 ‘일심’이나 《화엄경》이 말하는 ‘순수불이’의 궁극적 실재(離言絶慮)의 근원적인 실재인 ‘일(一)’인 것이다. 그 ‘하나의 님’은 원효의 사상으로 표현한다면, ‘마음의 인격적 표현’일 뿐이다.23)

그간의 철저한 단일신론은 다양성이나 ‘무’를 용납하지 못하고 ‘하나’ 내지는 ‘유’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해왔다. 그러다 보니 지배적인 독재자, 도덕적 심판자로서의 신 표상 및 신 죽음의 신학이나 허무주의와 같은 것을 낳았다. 이것은 ‘존재’로 시작한 신학의 필연일지 모른다. 존재 중심의 신학은 필연적으로 시작과 끝을 보고자 한다. 서구 그리스도교의 직선적 역사관이 사회 변혁적 힘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진리 독점적이고 유일회적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경향도 컸다.

송천성(C.S.Song)의 말마따나 직선적 시간관은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고 규칙에 맞지 않는 것은 절단해 버린다. 만나는 것들은 모두 심지어 하느님이나 하느님께서 하신 일까지도 기하학적으로 처리해 버린다.” 늘 ‘이거냐 저거냐’ 식의, 선택적인 물음을 던질 뿐이며, 선택된 것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배타한다. 이것과 저것의 그 ‘중간(中)’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도(中道)가 용납될 수 없는 배중률(排中律)적 태도에 머물고 만 것이 이른바 정통 신학이었다.

‘중’을 배타하는 배중률은 다원론을 담지 못한다. 적어도 다원론에는 이것 저것을 모두 용납하려는 논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변선환은 존재 중심의 논리, 그리고 로고스로부터 출발한 논리는 아무리 해도 배중률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그는 생전에는 출판하지 않았던 논문에서 불교적 공(空), 일본 쿄토학파의 절대무(絶對無)를 포괄시키는 신론, 로고스적 논리를 벗어나는 렘마적 논리를 전개하고자 했다.24) ‘렘마’란 ‘직관적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것‘에 대한 말’, 즉 로고스가 필연적으로 주체와 대상을 분리시킨다면, 렘마는 통일적으로 포섭한다. 그에 의하면, 신은 로고스적 논리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며, 렘마적 구조로만 설명된다. 그러한 신은 배중률의 신이 아닌, 이른바 용중률(容中律)의 신이다. 비록 이러한 신학을 구체적으로 완결 짓지 못한 채 타계하고 말았지만, 신을 절대무의 논리, 렘마적 구조로 파악하고자 한 것은 상당히 ‘급진적인’ 접근법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신학 자체를 불교적 구조에 맞추려는 시도를 벌인 셈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그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종교 경험을 동일한 경험으로까지 보고자 한다: “동일한 신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 안에서 타종교들의 초월자 체험은 우리를 신의 신비를 향하여 보다 가까이 나가게 하여준다. 신비는 궁극적으로 동일한 것이다.”25)

변선환은 신을 ‘공’이나 ‘무’에서 출발하여 연기적(緣起的)으로 표현될 수 있는 궁극적 실재, 포괄자라는 입장으로 전개시켜 나간다. 여기서 말하는 신이란 일(一)과 다(多)를 용납하고, 유와 무를 상통시키는 궁극적 실재이다. 그는 이렇게 신관의 변화를 요청하면서, 그것을 불교와 같은 동양 종교를 제대로 볼 수 있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그것은 동시에 동양의 종교들을 만나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나가는 그리스도교 자신의 해석학적 변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던 그리스도교 신학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자신이 불교적 세계관과 만나는 순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불교적 세계관 안에서 불교적 세계관에 어울리게 스스로의 모습을 탈은폐시킨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교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란 자가당착이자 자기모순이다. 그리스도교가 타종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미 그리스도교는 그 타종교에 의해 변화된 그리스도교일 수밖에 없으며, 타종교는 더 이상 ‘타’종교로 남아있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중심부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교의 주인이 되어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와 타종교’ 혹은 ‘기독교와 불교’ 식의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이들 사이의 그 ‘와(and)’는 이들을 대립적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힌두교의 문제를 두고 씨름하는 파니카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이들을 상호 대립적이거나 어느 하나에 의해 다른 것이 완성되어야 하는 성취론의 자리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는 ‘종자와 열매’라는 정적 관계에 있지 않고, ‘자연과 초자연’이라는 자연신학적 성취설의 입장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는 궁극적 실재를 중심으로 도는 저마다 고귀하고 대등한 신의 자녀들이다. 야스퍼스가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불가결의 보충”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진리는 특정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서로에 의해 보충되어야 할 열려진 것이다. “길은 종착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숲길(하이데거)은 제각기 뻗어나고 있기는 하나 결국 같은 숲속에 있다. 길은 결코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독점물이 아니다.”26) 파니카가 말하듯이, 이러한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의 종교간 대화는 더 이상 ‘종교간(interreligious)’ 대화가 아니라 ‘종교 내(intrareligious)’ 대화이다. ‘나’는 ‘너’가 있음으로써 ‘나’가 되며, 그런 점에서 ‘너’는 ‘나’ 안에 있기 때문이다.

변선환은 말년으로 가면서 더욱 이런 신학을 추구했다. 물론 이런 접근은 그리스도교의 전체적인 입장은 분명히 아니다. 아직은 소수 학자들에 의해서만 시도되고 있는, 여전히 앞선 자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보건대, 앞으로 더욱 열심히 걸어가야 할 길이자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변선환의 신학은 불교라는 거대한 흐름을 수용하는 가운데 정통 신학이기를 거부하면서 비정통의 길―사실상 새로운 정통의 길―을 이루어가는 선구자적인 것이었던 셈이다.

6. 변선환 불교관에서 아쉬운 점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가 비록 ‘타종교의 신학’과 같은 것을 제안했지만, 그의 신학이 정말 타종교를 주체로 하는 신학이었는지는 약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타종교를 객체가 아닌 주체로 보려면, 그렇게 보는 그리스도교적 주체의 부정이 전제된다. 그리스도교의 부정이란 타자를 그저 대상으로 조작해 버리고 마는 주체의 해체이다.

그러나 변선환은 불교를 전반적으로 “불가결의 보충” 차원에서, “사랑하면서의 투쟁” 차원에서 보면서, 끝까지 그리스도교적 최후의 보루를 붙들었다. 물론 한편에서 보면 그것은 지극히 정당한 자세일 뿐더러, 그의 신학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교 현실 안에서 보면 여전히 선구자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의 ‘타종교의 신학’은 그저 구호에 그치고 말았으며, 불교는 신학을 풍요롭게 해주는 ‘수단’에 머물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이 철저하게 부정됨으로써 다시 긍정되는 360도의 신학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수한 불교학자, 경전들을 거론하면서 불교적 도전 앞에 그리스도교 신학이 자기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절대무로서의 신까지 적극적으로 말하지는 못했으며, 결국 교회를 사랑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자, 그리고 그가 속한 감리교회의 신학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데 그치고 만 것이 아닌가 싶다.27)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불교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물음 앞에서 변선환의 불교관은 충분히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한 개방적인 그리스도인의 답이다. 그리스도인이 불교를 이만큼 자신 안에 소화하기까지 얼마나 처절하게 고뇌했을까? 그리스도인은 물론 불자들이 더욱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톨릭, 개신교를 막론하고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이만한 신학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는 아직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자세를 여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교가 도그마적이고 형식적인 자세를 극복하고 진정한 삶의 실천에서 불교를 참으로 만날 수 있게 되는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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