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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속인다는 것
09/30/2011 14:09 댓글(0)   |  추천(1)

내가 나를 속인다는 것


내가 누구를 속인다는 것은 나의 거짓말이나 꾀에 상대방이 넘어가 손해를 보거나 낭패를 본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거짓말을 하는 주체와 거짓말에 넘어가는 상대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속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짓말을 하는 주체도 나이고, 거짓말의 상대도 나인데 어떻게 내가 나를 속일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아마도 내가 처한 입장이나 분위기, 또는 잘못된 판단에 따라 본래의 나의 입장이나 관점과 다르게 행동하고 처신할 경우일 것이다. 이로부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게 된다.


시인 윤동주는 ‘또 다른 고향’에서 나 자신을 못돼먹은 나(백골), 평소의 나, 그리고 아름다운 혼의 나 등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백골이란 나는 나의 아름다운 영혼을 팔아먹으며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타락한 나이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이다. 그는 타락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영혼만이 살고 있는 본래의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그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시인 김수영은 ‘성(性)’에서 또 다르게 내가 나를 속이는 예를 들고 있다. 불가피하게 오입을 하고 와서 안 그런 척 아내를 속인다.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의 배경을 아내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끝까지 아닌 척 치열하게 애를 쓰게 되면 아내는 내막의 전모를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의 의도는 아내를 속이자는 것이었는데, 나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한다면 나의 의도와 목적에 어긋나 결국 내가 나를 속이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한다. 아내와 잠자리를 하면서 머리가 터지도록 복잡한 생각에 잠겨있는 것이다. 심신이 극도로 피곤한 성(性)이다.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性’  김수영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한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 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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