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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
09/27/2011 19:09 댓글(0)   |  추천(1)

늦가을의 산책 / 헤르만 헷세


가을비가 회색 숲에 흩뿌리고,

아침 바람에 골짜기는

추워 떨고 있다.

밤나무에서 밤이 툭툭 떨어져

입을 벌리고 촉촉이 젖어

갈색을 띄고 웃는다.


내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와

바람은 찢어져 나간 나뭇잎을

딩굴게 하고

가지마다 흔들어 댄다.

열매는 어디에 있나?


나는 사랑을 꽃 피웠으나

그 열매는 괴로움이었다.

나는 믿음을 꽃 피웠으나

그 열매는 미움이었다.

바람은 나의 앙상한 가지를

쥐어뜯는다.

나는 바람을 비웃고 폭풍을 견디어 본다.


나에게 있어서 열매란 무엇인가?

목표란 무엇이란 말인가!

피어나려 했었고, 그것이 나의 목표다.

그런데 나는 시들어 가고,

시드는 것이 목표이며,

그 외 아무 것도 아니다.

마음에 간직하는 목표는 순간적인 것이다.


신은 내 안에 살고, 내 안에서 죽고

내 가슴속에서 괴로워한다.

이것이 내 목표로 충분하다.

제대로 가는 길이든 헤매는 길이든,

만발한 꽃이든 열매이든

모든 것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이름에 불과하다.


아침바람에 골짜기가 떨고 있다.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져,

힘 있게 환하게 웃는다.

나도 함께 웃는다.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던져 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남은 열매가 무르익도록

하명(下命)하여 주시고

남국의 날씨를

사흘만 더 베풀어 주소서.

무르익으라, 

이들을 재촉하여 주시고,

마지막 남은 단맛이

포도주로 담뿍 고이게 하소서.


제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제 고독한 사람은

오래오래 고독을 누릴 것입니다.

밤을 밝혀 책을 읽고,

긴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 잎이 휘날리는 날에는

불안에 떨며

가로수 길을 마냥 헤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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