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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學而
09/20/2011 22:09 댓글(3)   |  추천(2)

다시 읽어보는 學而


논어의 서두, 학이편 1장의 구절은 너무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진부(陳腐)한 가르침으로 보인다. 또한 얼핏 보면 그 내용이 너무나 평범하여 새겨서 듣고, 느껴서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류의 스승, 공자의 말씀으로서 학이편의 첫 세 문장은 나이가 들수록 새록새록 다시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진리이자 명언임을 느낀다. 어쩌면 그렇게도 삶의 원리, 인간관계, 사람의 바람직한 됨됨이에 대해 정곡을 찌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또는 때를 맞추어) 익히고 실천한다면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여 경세제민(經世濟民)에 배운 바를 때맞추어 적용한다면 큰 보람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또한 클라리넷을 배워 밴드활동을 하고 양노원 노인들을 위문해도 좋고, 스윙의 원리를 깨달아 친구와의 골프에서 300야드 이상 드라이버를 쳐도 즐거울 것이다.


여기서 배움의 즐거움은 군자가 되기 위한 인(仁), 의(義), 예(禮), 효(孝) 등 인간의 윤리와 도덕에 국한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진(眞), 선(善), 미(美)에 관한 총체적인 것에서 비롯될 것으로 본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 순리대로 종교적인 삶을 살고, 어짐과 의로움을 배워 참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며, 문학과 예술을 배워 낭만과 꿈이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인간은 굳이 실존주의 철학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불안하고 고독하다. 삶의 방식과 진로를 스스로 결정해 나가며, 죽음까지의 길을 혼자서 가야한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뜻을 공유하고 외로움을 덜 수 있는 친구와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다. 슬픔과 기쁨과 추억을 함께 나눌 친구가 있어야 한다. 여자들은 오죽하면 늙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돈과 딸에 이어서 친구를 꼽았겠는가?


못난 사람끼리는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하는데, 나이 많아서는 사람의 그림자만 봐도 훨씬 더 반갑다. 이때 “멀리로부터 생각지도 않게 동문수학(同門修學)했던 친구가 찾아오면 이것 또한 얼마나 즐겁겠는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거나 언짢아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진정으로 성인군자가 아니겠는가?” 알아주지 않는데 성내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으로 군자가 되기는 지난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방향을 잡아 군자 내지 인격자가 되는 길로 가야한다.


우리는 나를 사회가, 친구가, 며느리가, 아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괴로워한다. 나의 과거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의 한 자리에 끼워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남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의 연속선상에 있다. 따라서 부질없는 남의 평가와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우리는 삶의 번뇌와 고통에서 90% 이상 해탈할 것으로 본다.


이 모든 내용과 가르침들이 나이가 들수록 구구절절 뼈에까지 사무치게 다가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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