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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짐승이 어디는 못 가나?
09/18/2011 00:09 댓글(2)   |  추천(1)

산 짐승이 어디는 못 가나?


어느 때 어느 곳에 원앙을 뺨치게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았다.

금슬이 지나치면 역설적으로,

피차간 의부증, 의처증으로 발전하게도 된다.


남편은 오랜만에 부산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부산에 신발공장이 많았으니까,

그러한 현지의 공장으로

업무를 보러가게 된 것이었다.


출장 가기 전날,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과

뜨거운 석별의 행사를 치렀다.

아내는 행복한 여운에 젖어들면서도,

남편을 믿지 못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남편이 과연 젖은 데를 밟지 않고,

출장을 다녀 올 수 있을까 고민도 되었다.


아내는 쑥스럽지만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요청했다.

“자기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내가 뭐, 자기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릴테니까,

자기 거기에다 예쁜 토끼 한 마리 그려 넣자, 응?”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뜬금없이....”

남편은 당황이 되는 한편, 토끼를 그리자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우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겠다는 맹세로, 그 상징으로 결혼반지도 끼잖아, 그러니까 그것도

자기하고 나하고의 선의의 약속인 셈이지 뭐.”


마침내 남편은 울며 겨자먹기로 아내의 요구에 응하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거시기를 골이 나게 다시 세우고는,

요새 유행하는 태투(Tattoo) 식으로, 그림을 박아 넣듯이,

토끼를 그리기 시작했다.

볼펜으로 좌벽(左壁)에다 정성껏 그렸다.

토끼가 뛰어나와 침대 밑으로 도망칠 것만 같이 잘 그렸다.


출장의 현지에선 멀쩡한 사람도 보헤미안이 되기가 십상이다.

일상의 속박에서 일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하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며 객기가 살아난다.


대낮의 업무가 끝나자 남편은 현지직원들로부터

장관 이상의 환대와 향응을 받기 시작했다.

상다리가 부러지듯 올라온 해산물을 안주로

처음으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2차로 으슥한 골목, 간판이 은은한 룸쌀롱으로 안내되었다.

특별히 초청된 가라오깨에 맞추어,

노래 노래, 사이 사이마다 폭탄주를 마셨다.

아가씨들은 하얀 휴지를 잔 뚜껑으로 하여

폭탄을 연이어 제조해 냈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춤도 추었다.

그리고 3차, 필름이 끊긴 뒤였다.


남편은 골이 빠개지는 것 같아 눈을 떴다.

방에는 혼자뿐이다.

강렬한 아침 햇빛이 호텔 방의 두꺼운 커튼 사이로 들어왔다.

옆 자리는 아내가 자다가 화장실에 갔을 때와 같이,

씨트가 한 사람 크기만 하게 열려 있다.


난장판 같은 방안을 훑어보다가 그는 번개같이

토끼 생각이 났다.

아뿔싸, 이게 웬 일인가? 살아 있어야 할 토끼가 온데간데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그는 빠개지며 별만 보이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수전증이 이는 한 손으로는 토끼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볼펜의 가늘기와 색깔은 염두에도 없이....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는 평소 이상으로 나긋나긋했다.

남편은 죄책감은 있지만, 꿇릴 것이 없다는 마음을 먹기로 했다.

잠자리에 들게 되자 예상한대로 아내는 토끼를 보자고 했다.


“자기야! 참 이상하다. 토끼가 분명히 왼쪽에 있었는데.... 아니, 어째서 그놈이 바른쪽 밑으로 왔지?

근데, 토끼도 옛날 토끼가 아니네?”

남편은 순간적으로 토끼를 반대편에 잘못 그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한발 한발,

다가갈 때와 같이 머리털이 곤두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없이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았다.


위기의 순간에 기지가 발휘되는 것인가?

남편은 애써 시침을 떼고 더듬거렸다.

“뭐가 문제야, 토끼가 왼쪽 언덕에서 풀을 뜯다가 풀이 없어지면 바른 쪽으로 갈 수도 있지 뭘 그래, 원 ~”

그리고는 못을 박듯이,

“산 짐승이 어디는 못 가겠어? 안 그래?”


남편은 일단 서둘러 둘러대기는 했지만, 위기의 순간들이 얼마나 이어질지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전말을 증언할만한 남편의 거시기는 정작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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