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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일기
09/13/2011 12:09 댓글(0)   |  추천(0)

‘가을 일기’  정호승


나는 어젯밤 예수의 아내와 함께 여관 잠을 잤다

영등포시장 뒷골목 서울여관 숙박계에

내가 그녀의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넣었을 때

창 밖에는 가을비가 뿌렸다 생맥주집 이층 서울교회의

네온사인 십자가가 더 붉게 보였다

낙엽과 사람들이 비에 젖으며 노래를 부르고

길 건너 쓰레기를 태우는 모닥불이 꺼져갔다

김밥 있어요 아저씨 오징어나 땅콩 있어요

가을비에 젖은 소년이 다가와 나에게 김밥을 팔았다

김밥을 먹으며 나는 경원극장에서 본 영화

벤허를 이야기했다 비바람이 치면서

예수가 죽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먹다 남은 김밥을 먹었다

친구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릴 수 없는 나는

아무래도 예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 미안했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곧 차 소리가 끊어지고 길은 길이 되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녀가 벗어 논 속치마 위로 기어갔다

가을에도 씨 뿌리는 자가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마른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불을 껐다

빈 방을 찾는 남녀들의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야윈 어깨가 가을 빗소리에 떨었다

예수는 조루증이 있어요 처음엔 고자인 줄 알았죠

뜨거운 내 손을 밀쳐내며 그녀는 속삭였다

피임을 해야 해요 인생은 짧으나 피임을 해야 해요

나는 여관 종업원을 불러 날이 새기 전에

우리는 피임을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겠다던 종업원은 돌아오지 않고 귀뚜라미만 울었다

가을비에 떨면서 영등포 경찰서로 끌려들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때

서울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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