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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안 됐다!
09/08/2011 22:09 댓글(0)   |  추천(2)

그것 참 안 됐다(That's too bad)!


한참 전 집을 옮겨볼까 하여 ‘링컨’이라는 도시의 시니어 아파트촌을 어슬렁 거린 적이 있다. 유명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델벗 유진 웹(Delbert Eugene Webb)이 아리조나에 최초로 지었던 은퇴마을(Retirement Community)과 유사한 곳이었다.


골프장을 끼고 있는 그곳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고적하여 새벽 두세 시의 거리에 햇빛이 비치는 듯 했다. 모퉁이의 예쁜 집에서 60세 가량의 사내가 정원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동네의 집 사정과 분위기, 주택가격 등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물어보았다. 나의 선입견은 그가 엄청난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있는 듯 했다.


그는 50세 전후로 이혼하여 줄곧 혼자 산다고 했다. 오전에는 아침 커피를 동네의 스타벅스에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마시며, 말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했다. 정오쯤에는 요리가 간편한 패스타류의 이태리 음식을 주로 만들어 점심을 먹는다 했다. 그리고는 골동품이 다 된 경주용 차를 수리하고 드라이브하는 것으로 오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나는 내 생각만으로 넓은 집에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세월을 어떻게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지금이라도 재혼하여 함께 살아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대뜸 “하나면 충분하다(One is enough!)”라고 항변하였다. 여자와 결혼의 경험은 한 여자, 한 번의 결혼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아니, 왜 그러냐 하자, 그는 ’여자는 너무 잔소리가 많다(They are too talkative)'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오른 손을 입에다 댄 뒤 네 손가락을 붙여서 위로 하고 엄지를 아래로 하여 오무렸다 폈다를 빠르게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도 아내의 잔소리와 바가지에 다소간 질력이 나 있고, 주위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 왔으므로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그러나 그의 너무도 단정적이고 확고부동한 판단과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의  잔소리에 따른 불편함이 아내가 없음으로 초래되는 모든 어려움보다 월등히 크다는 말인가? 나는 그가 여자의 잔소리와 바가지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려는 용의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자는 수다스럽기 때문에 아예 피해만 다니는 남자인 듯 했다.


어제 그저께는 우리 아파트촌의 가운데에 위치한 수영장에서 어떤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일찍이 스페인에서 이민을 와 이곳에서 대학까지 나왔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의 바로 앞 동에 혼자서 잠시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스페인 출신이었으므로 우리의 대화는 자연히 월드컵 축구와 나달, 가르시아 등 스페인의 유명 스포츠 인들에게 모아졌다. 그리고 개인적인 얘기 끝에 그는 나의 가족사항을 물었다. 내가 아내와 둘이 산다고 하니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참 안 됐다(That's too bad)"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남자끼리 격의 없는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제스처로서 오른 발로 그를 차는 시늉을 했다. 그는 평소의 마음을 말한 듯 하고, 나 역시 그의 말에 일부 동의하여 그의 말은 우리 사이에 농담이자 진담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발길질에 내가 화가 난 것으로 알고 정식으로 사과하기 시작했었다.


극히 자연스럽게 “참 안 됐다”라고 했던 스페인 남자 역시 여자의 잔소리를 싫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홀가분하게 무한히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 것인가? 남녀 모두 반드시 결혼하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부부의 강령에 확신이 서지 않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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