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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네와 홍이
09/07/2011 11:09 댓글(0)   |  추천(1)

임이네와 홍이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이용은 허우대가 늘씬하고 용모가 준수하지만 어질기가 이를 데 없는 농사꾼이다. 소년 시절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무당의 딸 월선을 지극히 사랑했지만, 어미가 일러주는 대로 강청댁과 혼사를 치뤘다.


그는 강청댁과 일찍이 상처하여 이별한 후 역시 같은 마을의 임이네와 관계하여 홍이를 낳았다. 임이네는 평사리의 대지주 최치수를 살해하는데 가담했던 칠성의 아내였다.  칠성이가 처형되고 홀로 과부가 되었던 임이네를 용이는 인간적으로 불쌍히 여겨 인연을 주었던 것이다.


임이네는 얼굴이 반반하고 건강하며, 동물 이상으로 식욕, 성욕, 재물욕이 많은 여자이다. 욕심이 지나쳐 인간의 도리와 예절을 모르는 여자이다. 따라서 용이도 홍이도 그녀를 증오하였다. 홍이는 생모보다 월선을 더 따랐다.


이후 용이는 임이네와 월선을 두 마누라 형식으로 데리고 살게 되었다. 월선은 용이로부터 자식을 못 얻었으나, 홍이를 용이의 또 다른 환생으로 생각하고 극진히도 사랑하였다. 월선은 암으로 한이 맺혀 죽었다.


아래는 용이가 오십줄이 되면서 풍을 맞아 눕게되고, 홍이는 식민지시대의 질곡과 불확실한 장래에 따라 매일같이 방황하던 때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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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절이 지나서 임이네가 돌아왔다. 그새 살이 너무 쪄서 목이 파묻힌 것 같고 허리통이 어지간히 굵어졌다. 그도 늙기는 늙었으나 건강하고 얼굴에 윤이 흐르는 것은 옛날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홍이 힐끗 쳐다본다. 임이네도 아들을 힐끗 쳐다본다. 눈과 눈이 원수처럼 부딪쳤다간 갈라진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간 임이네

“솥에 이기이 머꼬!”

“..........”

“빌어묵을 놈, 에미 말이라 카믄 소태 묵은 강아지 상판, 이놈아! 귓구멍에다 소캐를 틀어막았나!”

쿵쿵 발소리를 내며 되돌아온 임이네,

“어이서 닭이 났노?”

타협하듯 언성을 낮추며 다시 묻는다.

“관수 형이 가지왔입디다!”

“흥, 그래? 주니 잘 묵겄다.”

“누가 어매 묵으라 하든가요?”

“누가 묵어도 묵기는 묵겄제.”

노려보다가 홍이는 할 수없이,

“오골계라고 약이라요. 고아서 닭은 건지내고 그 물에다 약재 넣어 달이라 그럽디다.”

“오골계? 그 귀한 기이 어이서 났는고? 재주도 좋다, 백정놈이.”

빈정거린다. 홍이는 이불을 쓰고 자빠지듯 눕는다.

“이놈아! 밤에는 잠 안 자고 머 했더노. 사대육신 멀쩡한 놈이, 세끼 밥만 축내고 니가 무신 장자 새끼라고 밤낮 없이 처자빠져, 일어나라!”

발로 걷어찬다. 그러나 홍이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세상에 이년같이 기박한 팔자가 또 어디 있겄노. 옛말에 서방 덕 없는 년은 자식 덕도 못 본다 카더마는 옛말치고 그른 말이 어디 있어서. 나는 살아보겄다고 동가자서가자 줄지갈지 하는데 송장 겉은 소나아는 죽을 묵으니 아나 밥을 묵으니 아나. 참말이제 약탕강만 보믄 주먹 겉은 것이 치민다. 내가 무신 할 짓꼬! 젊은 날부텀 이날 이적지 이가놈 집구석하고 전생에 무신 원수가 져서, 참말이지 울라 카믄 며칠 몇날을 울어도 씨원찮겄다. 자식새끼 하나 있는 것도 에미를 발싸개만큼도 안 여기는데 내가 머 한다고 그 모진 세상을 살았는지 모리겄다. 남들은 자식한테 아무 공 안 딜이도, 절로 나서 절로 크고 돈을 벌어 어미 손에 쥐여준다 카더마는, 아이구 무서리야! 참말이제 살고접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어느 구신이 그만 날 잡아갔이믄 좋겄는데 그놈의 구신 눈이 멀었는가......”

한없는 넋두리를 하면서 바가지 속에 담긴 볶은 콩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는다.

“하나라고 오냐오냐 길렀더니 하나 자석 소자 없다, 그 말이 맞는 기라. 옆집 죽장수 할매는 무신 대복을 타고 났는고. 어저께도 아들이 새경을 받아서 어매한테 갖다 주고 내사 참말이제 부럽더라. 이놈아! 듣나 안 듣나! 그 머심애 나이 몇인지 알기나 아나? 열여섯 살이다, 열여섯! 일본 사람 오복점에 심부름함시로 거 일본 사람 버선도 가지오고, 니 나이 몇꼬? 열아홉이다, 열아홉이라! 그 좋은 일자리 누구나가 구하나? 나가믄은 월급이 이십 원인데 와 안 갈라 카노! 안 갈라 카믄 내일부텀은 밥을 묵지 말든지, 무신 염체로 아가리에 밥 처넣을 기고!”

나가라는 일자리는 요리집에서 회계 보는 곳이었다.

“세 끼 밥 먹으면 어매 번 것 가지고 먹나?”

이불 속에서 대꾸한다.

“그라믄 누 번 것 가지고 묵노?”

“송장이라 하지만 나야 아버지 번 것 먹거마는,”

“얼시구 그럴 기다. 그 알량한 돈 몇 푼 최부잔가 거기서 나오는 돈 약값도 안된다! 이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가. 흥, 간도서 을직에 알거지가 아니고 머든고? 몇몇 해를 내가 종질해서 당연히 받아내야 할 그년(월선)의 돈도 어느 개뼉다구한테 시줄,”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나 앉는 홍이,

“시끄럽소! 더 말하면 지붕 몰랭이다가 불을 질러버릴 긴께.”

“그년 말만 하믄 미치는고나.”

“미치는 꼴 보겠소?”

“운냐! 볼란다!”

꼬리를 감고 달아나면서 짖는 개처럼 악을 쓰고 임이네는 방을 나간다. 홍이는 무거운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꿈속에서 장이를 만났다. 끝없는 수수밭이었다. 홍이는 수수밭에서 장이를 능욕한다. 지평선에 해가 지고 있었다. 울고 몸부림치는 장이를 잔인하게 능욕했다. 눈을 떴을 때 장지문에 비치던 햇빛을 없고 개천 저쪽에서 장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이는 기지개를 켜면서 꿈속의 잔인한 그 쾌감을 완미하는 것이다.

(목이 마르다.)

방에서 나간다. 물을 먹으려고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 임이네가 당황하여 홍이를 쳐다본다. 손에 물바가지를 들고 있다. 홍이는 순간 선반 위에 놓인 사발을 들어본다. 기름기 도는 국물이 사발 바닥에 남아 있다. 손바닥에 닿은 사발은 따뜻했다. 홍이는 사발을 놓고 오지솥의 뚜껑을 열어본다. 방금 부었는가 미지근한 맹물이, 그 맹물 속에 불어터진 닭, 모가지를 잘리고 두 다리를 웅크린 닭이 있다.

홍이는 화덕을 번쩍 들어 임이네를 향해 냅다 던진다.

“어이구!”

오지솥의 물과 닭이 부엌 바닥에 쏟아지고 오지항아리는 산산조각, ㅤㅅㅗㅊ불 꺼지는 소리, 숯에서 김이 오른다. 뿌연 김이 오른다.

“이놈이 사람 잡네,”

임이네는 손들을 감싸며 쉰 목소리로 그러나 나직이 울부짖는다. 싯뻘건 숯덩이 하나가 손등에 떨어져서 손을 덴 모양이다.

“이놈아!”

임이네는 홍이에게 돌진해 온다.

“이 원수놈아!”

손들을 물어뜯는다. 홍이는 입을 다문 채 확 떠민다. 임이네는 궁둥방아를 찧으며 부엌 바닥에 뒹군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홍이를 거머잡는다. 난투극이 벌어진다. 피차 말없이 응, 응 하는 소리, 투닥거리는 소리.

얼마 후 홍이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는데 홍이는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천하에 몹쓸 놈이 돼 있을 것이다. 불효 막심한 놈이 돼 있을 것이다. 덴 손등을 이웃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할 것이다. 자식밖에 모르는 나에게 술값 안 준다고 행팰 부렸노라. 남편에게 줄 오골계 진국을 마셔버리고 객물을 부은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서도. 이웃 간에선 임이네도 인심을 얻으려 노력한다. 실속 없는 말로써. 하기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이웃 간에선 여자가 부지런하고 맺잡고 야물다는 평판이 나 있긴 했다. 병든 남편 시중드느라 욕본다고들 칭송하기도 했다. 천하에 몹쓸 놈 불효 막심한 놈, 오냐 천하에 몹쓸 놈이 되어주지! 되어주면 될 거 아닌가.

(뭣이 될꼬? 백정이 될까? 남사당이 될까?)

홍이는 밤늦게까지 거리를 헤맨다. 술집을 볼 때마다 차고 들어가서 동이째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뭣이 될꼬? 도적놈이 될까? 살인을 할까? 도적질을 해서 금덩이를 안기줄까? 그라면 어떤 얼굴을 할꼬?)

홍이는 밤이 아주 저물었을 때 소주 한 병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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