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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在와 無
07/19/2011 21:07 댓글(4)   |  추천(1)
 

存在와 無


1. 실존주의의 개요


인간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실제적인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 나가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이다. 20세기 초를 풍미한 서양철학의 하나로서 이후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인문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의 중심인물이었던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를 선언하였다. 창조주에 의해 보편적인 목적과 의도에 따라 인간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먼저 이 세상에 우연하게 던져져 실존하면서 인간 각자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인간의 본질과 됨됨이가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하였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는 명제에 따라 최종적으로도 자명한 인간 존재의 근거는 생각함에 있다 하였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주장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을 하기 위한 필수조건들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다(I am, therefore I have one of the prerequisites for thought).'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 이전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사전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존재이며, 그 자신을 무엇인가로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로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가능태(可能態)라 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끊임없이 본질을 재조정해 나가는 자이다.


2. 존재와 무와의 관계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물은 크게 분류하여 즉자적(卽自的)인 존재와 대자적(對自的)인 존재가 있다 하였다. 즉자적 존재란 그냥 거기에 있는 존재로서 의식이 없고 자체로서 충만하여 완전 고립된 존재이다. 인간을 제외한 사물과 자연물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편 대자적인 존재란 의식을 가진 존재이며, 즉자적인 존재를 인식, 의식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이 유일한 대자적인 존재이다.


인간 존재의 총체적 일부라 할 수 있는 의식은 외부에 있는 사물을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성을 확보해 나가는데 원용한다. 대자적인 존재는 의식의 즉자적 존재에 대한 지향성과 인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수정,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특정 순간의 인간의 본질도 고정되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항구적인 인간의 본질과 존재는 없는 것, 즉 무(無)하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불교의 삼법인(三法印) 사상과의 비교


불교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러 가지 원인과 여러 가지 조건들, 즉 인연(因緣)에 의하여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과 조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존재도 무한히 계속되는 존재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형상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멈추지 않으며, 인간도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원리이다. 또한 모든 것이 연기의 법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나의 본질, 나의 것, 나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일체의 사물은 항상 변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고 인간도 결국 병들고 죽게 되는데, 이렇게 인간의 마음대로 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지 못하는 고통이 일체개고(一切皆苦)의 현실인 것이다.


불교와 사르트르에서 존재가 ‘없음(無)’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유사한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순간도 머물지 않고 무언인가로 변해나간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그러나 존재의 변화원인으로서 불교는 연기법에 따른 인연의 변화에, 실존주의의 사르트르는 인간 의식의 대외지향성과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에 따른 본질의 변화에 그 원인을 두고 있음에 차이가 있다. 하이데거가 주장한 존재의 시간성도 같은 맥락에서 유사하다 하겠다. 장차 닥쳐올 죽음과 미래를 예견하여 현재의 나의 모습과 본질을 바꿔나간다는 관점에서 그런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무엇인가로 변하고 있다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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