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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루소
05/08/2011 21:05 댓글(1)   |  추천(3)
 

老子와 루소


20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동양과 서양에서 노자와 장 자크 루소는 온갖 인위적인 것들을 타파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두 사람의 사상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도 유사하고 합치하는 것들이므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노자가 루소보다 2000살이나 많으므로 루소가 노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터인데, 루소가 활동하던 시대인 18세기에 동양의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서양에 수입, 소개되었는지 궁금하다. 혹시 마르코폴로가 귀국하면서 그의 보따리에 ‘도덕경’을 가져와 ‘동방견문록’에서 소개했던 것인가? 그러나 루소라는 사상가는 스위스의 산골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므로 노자의 사상에 접할 기회는 전무했을 것이다. 따라서 루소가 나름대로 주장한 내용이 결과적으로 노자의 사상과 일치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老子와 無爲自然


노자(BC 604~531)는 춘추시대의 사상가로서 ‘도덕경(道德經)’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의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노자의 핵심사상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순리에 해당하는 도(道)를 따르면서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무위란 인위(人爲) 또는 유위(有爲)의 반대개념으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대적인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와 규범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무위는 인간의 상대적인 지식과 인식의 오류로 말미암아 혼란해진 자기 자신과 사회를 정화함으로써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려는 방법이며, 동시에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술인 것이다.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무엇인가를 보태는 것이고, 도를 실천함은 날로 무엇인가를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서 함(爲)이 없음(無爲)에 이르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또한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라고 하였다. 이는 천하의 평화를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와 법을 지킬 것을 강요한 공자의 유가사상과 크게 대조되는 것이다. 


노자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적 본성을 지닌 존재이며, 사회 혼란의 원인은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도덕적 예절이나 규범 등을 강제하는 국가권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상대적인 가치판단은 도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결국 사회적 갈등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쫓아 개인의 삶이나 국가를 영위해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노자의 주장 중 경구로서 새겨야 할 역설적인 가르침을 들면 다음과 같다.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도

  와  원칙은 절대적인 자연의 도에 어긋나는 것임.

- 대도폐 유인의(大道廢 有仁義) : 인간의 상대적인 제도와 법이 없어지면 오히려 인과 의

  가 생긴다.

- 절인기의 민복효자(絶仁棄義 民復孝慈) : 인을 끊고 의를 버려라, 그리하면 백성은 저절

  로 효도하고 자애로울 것이다.

- 절학무우(絶學無憂) : 배움을 그만 두어라, 그러면 근심이 없어진다.

- 위자패지 집자실지(爲者敗之 執者失之) : 하려는 자는 패할 것이오, 가지려는 자는 잃을

  것이다.

-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 : 큰 나라 다스림을 마치 작은 생선을 굽듯 하라.

- 소국과민(小國寡民) : 작은 나라의 적은 백성이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이상에서 노자는 인간의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지식, 규범, 예절, 제도에 따라 우리의 사회와 개인적인 삶이 자연 그대로의 도에 따르지 못하고 사회의 혼란은 가중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양의 자유방임 사상에서와 같이 정부의 규모는 줄이고 개인생활에 대한 간섭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국리민복을 위해 최선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정부규모의 축소를 주장하는 미국 공화당의 정강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불완전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배움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주장도 새겨들을 만하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인간 본래의 천부적인 자유와 평등 사상을 주창함으로써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헌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정식교육을 받을 계제가 못되었다. 그러나 천재는 문득 세상에 나오듯 그는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 현상공모에 “인간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논문이 당선됨으로써 일약 유명한 계몽주의의 비판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의 주요 저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 불평등의 기원’, ‘사회계약론’, 그리고 ‘에밀’ 등으로서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던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을 부정하고 자연의 원칙에 따를 것을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반자연적이고 인위적인 학문과 예술, 그리고 제도와 법은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모든 학문과 예술은 도덕적 타락에서 기원하는 것이므로 인간은 문명 이전의 상태, 즉 자연의 소박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에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로서 선악의 개념에서 벗어나 악을 행할 조건도 없는 순수한 자연인이었다. 힘 있는 강자에 의한 속박과 예속, 굴종과 지배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였다. 자연인으로서 인간은 기본 욕구로서 고작해야 먹을 음식과 여자, 그리고 충분한 수면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인간의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인간의 단순한 자기애(a love of self)는 타자를 의식하고 자만과 질투심이 가득한 자기애로 변하게 되었다. 힘 있고 재주가 많은 사람의 등장으로 부의 평등성이 깨지고 인간은 남과 비교되는 상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희소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투쟁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었던 바, 이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으로서 모든 악과 불행의 기원이 되었다(‘인간의 불평등 기원론’). 또한 일부의 강자가 생산수단을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했던 나머지 사람들은 노동자로 전락하고 양자는 소유와 종속의 관계로 변하게 된 것이다.


국가와 법은 어디까지나 있는 자의 편이고 모순된 사유재산제도와 빈부차를 합법화하는데 골몰할 뿐이므로 이러한 제도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개혁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국가의 상태에서 자유와 평등과 같은 자연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인간자신에게만 복종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 수 있는가?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공통의 이익과 자유 평등을 지향하고자하는 일반시민의 목적, 즉 일반의지(General will)를 대리자로서의 국가에 위탁할 것을 제안하였다. 일반의지란 진리와 선을 전제하는 의지와 평등(공화주의)을 향한 의지를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제도는 국가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일반의지를 위탁한 국민이라는 민주헌법의 모태가 된 것이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주장은 실제로 우리가 원시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천부적 자연권인 자유와 평등이 현대사회에서도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사점과 맺는 말


시대와 공간의 엄청난 간극에도 불구하고 노자와 루소는 자연을 모범과 전거로 삼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사회의 제도와 법의 부당성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였다. 그러나 노자는 자연의 도를 따르기 위해 인위적인 제도와 법의 일반을 끊임없이 덜어낼 것을 주장한 반면, 루소는 기존의 체제를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자연 상태의 자유와 평등한 제도를 성취하고자 하였다.


인간의 이성과 합의로 이루어낸 제도와 법은 모두가 양면성이 있다. 가령 사유재산제도는 궁극적으로 평등을 저해하고 굴종과 종속의 관계로 몰아넣는다고 하지만, 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피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에 따라 인간의 창의성과 근면성이 고취되어 경제가 발전되는 것이다. 노자의 정치사상으로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주장 역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일맥상통하여 개인의 이윤동기와 자유를 보장하겠지만, 공평한 부의 분배를 위해서는 큰 정부와 정부의 역할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놀드 하우저라는 문화비평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루소가 끼친 영향력의 깊이와 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는 후일의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처럼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킨 위대한 사상가다”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지금에 와서 반추하게 되면 단순하기 짝이 없고 누구나 상정할 수 있는 가설에 불과하다. 그는 마치 시를 짓듯 인간의 불평등과 부자유라는 주제를 원시사회를 소재로 삼아 펼쳐 나간 것 같다.


루소의 자연에 대한 생각과 판단은 이미 2000년 전 이미 동양에도 잘 다듬어진 노장사상으로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내포된 무위자연의 사상은 신선과 풍류를 중시하는 도교의 형태로 전환되었을 뿐 실제적인 인간의 제도에 응용되지 못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양이 사상에서 우선했지만 사상의 원용에는 서양에 뒤진 것이다.


루소는 인생의 대부분을 유랑하고 도망 다니면서 우연히 만난 세탁부와의 사이에 자식 5명을 낳고 그들 모두를 고아원에 맡겼다 한다. 그러한 인격 파탄자가 ‘에밀’이라는 교육지침서를 쓰고 이것이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장 자크 루소

노자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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