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구슬 놀이
  • 구슬 놀이 (jaeok9876)

비도덕적인 집단과 사회
04/16/2011 22:04 댓글(4)   |  추천(3)
 

인간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서와 같이 홀로 있거나 소집단에 속해 있을 경우에는 염치를 많이 느끼며 도덕적이고 착하다. 그러나 이렇게 착하고 도덕적인 인간은 소속된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기성과 야수성을 나타내면서 비도덕적으로 변한다. 집단에 소속된 인간도, 그 인간들로 구성된 집단도 모두 비도덕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하기도 할뿐더러 개인의 이익의 보호를 위해 집단을 만들고 그것에 자발적으로 귀속하여 충성심을 보인다(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인간이 만드는 집단에는 작게는 다양한 이해집단(interest groups)과 비정부기구(NGOs)를 포함하여 지역, 사회계층, 민족, 국가, 인종 등에 따른 광범위한 집단도 있다.


사회와 국가는 집단으로 구성되며 인간은 대부분 개인단위가 아니라 집단을 통해 사회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나 나의 집단도, 너의 집단도 모두 기실 따지고 보면 매우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비도덕적인 것이다. 우리가 만약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건설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가진 사회와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실로 암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집단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가의 비근한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노사분쟁에서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자기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집단, 지역이기주의에 함몰된 지방단체, 이념적으로만 환경문제를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이 그것들이다. 범위를 넓힐 경우 국가와 지역적인 국가연합도 다분히 자기주장으로 일관하는 비도덕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법 없이 살 수 있으며 착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물불 안 가리고 전투적으로 변한다. 양반으로 정평이 나 있는 특정지역의 순한 사람들이 행정수도 분할문제에 대해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이다. 미국 국민들 대다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선하되 아주 선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국가는 제국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으로 세계경찰을 자청하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이유로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비도덕적인가? 이에 대해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라는 책에서 집단은 단순한 개인의 집합체가 아니고, 개인과 다른 목적을 가진 유기체적인 개체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집단은 대부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항상 윤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개개인은 본성으로서 도덕적인 착한 심성과 함께 이기적인 측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다. 인간은 퇴니에스가 주장하는 혈연, 지역, 애정에 기초한 공동사회(Gemeinschaft)에서는 자기희생적이고 도덕적인 본성이 이기적인 본성을 압도하여 도덕적이다. 그러나 선택의지에 입각한 수단적 결합체로서 이익사회(Gesellschaft), 즉 이익집단(interest groups)에 소속하게 되면 개인의 도덕성이 단체의 뒤에 숨어버리고 집단적인 에고이즘에 빠져 비도덕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간의 분쟁은 이성과 양심, 그리고 도덕교육에 의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반면, 단체, 국가, 인종, 민족 간의 분쟁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인간이 이익집단의 단위에서 비도덕적으로 변하는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제한적으로 관대하다. 또한 인간은 낯선 사람보다 자기 자신과 친구, 동료, 출신지역에 대해 편애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가 소유하거나 소속된 것에 지극한 애정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개인이 집단에 소속될 경우 개인의 양심과 도덕심은 익명성과 군중심리에 의해 크게 희석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량학살에서 개개인의 병사들은 도덕적이었지만, 나치 정부는 끊임없이 국가가 책임 질 것임을 강조하여 학살을 독려했다고 한다. 도둑도 공동으로 할 경우 일 개인이 부담하는 비도덕감은 1/n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집단적인 비도덕성을 제거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니버는 개인적으로 선해진다고 해서 사회의 비도덕성이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므로 도덕교육은 무익하다 하였다. 사회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책임, 윤리의식을 제고함으로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회집단의 악이나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강제력의 동원도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강제력을 행사하는 집단 역시 비도덕적이기는 매일반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사회의 구조나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며, 종교적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그는 혁명을 통한 정의보다는 정치적 힘에 의한 정의실현으로서 점진적인 의회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앞날이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의회주의를 통한 제도의 개혁은 모든 집단에게 공평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달성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의회의 제도개혁의 과정에 다수 집단의 로비와 영향력이 행사되고, 힘 있는 집단의 의지대로 제도가 개악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치인이란 선거에서의 당선과 개인이익의 추구에만 관심이 있어 보편적인 도덕성과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당선을 위해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행정수도의 분할을 강행하고, 그에 따른 엄청난 비효율성과 국가의 백년대계에도 눈 감는 자들인 것이다. 이렇도록 세상이 나아질 기미조차 없을 것 같아 우울하기 그지없다.

 

 
라인홀드 니버(1892-1971)

  미국의 개신교 신학자, 목사로서 루터교회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에게도

  큰 영향을 미침. 오바마 대통령 역시 니버의 정치사회 윤리사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함.

 
고전/인문사회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