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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04/08/2011 11:04 댓글(5)   |  추천(2)
 

우리들은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의미가 없으며, 덧이 없음을 한탄하며 살아가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에서 개인의 운명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보여 주었다. 쿤데라는 4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사랑의 진지함과 가벼움, 사랑의 책임과 자유, 영원한 사랑과 순간적인 사랑 등 모순되고 이중적인 사랑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서 인간존재의 가벼움과 한계를 그리고 있다. 사랑과 성(性),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는 반목을 거듭하는 이들은 오랜 방황의 세월의 끝에 인간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unbearable lightness)'이란 니체의 ’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운명은 일회성에 그치며 부서지기 쉬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즉, 우리의 인생은 실패의 경험을 살릴 가능성조차 없이 끝난다는 것이다.


미국의 뉴욕 시는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거리에 1천만의 인구가 밀집하여 사는 도시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의 시스템과 군중들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소외된 낱낱의 모래알들이다. 개인은 도시와 물질의 부속품으로서 처절한 고독 속에 존재의 두려움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이에 대한 반사작용이 전위적이고 데카당스한 예술과 행동양식들일 것이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극복할 수 없다.


시인 황동규는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신라의 원효에 비유하며 문화가 낯설기만 한 뉴욕의 개미 같은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원효는 당나라에 가지 않고도 불교의 원리를 알아차리고 견성했으나, 황동규 시인은 미국에 와서야 미국과 미국인들의 존재의 가벼움과 허무함을 터득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햇볕조차 못 받는 하숙방의 앵초꽃과 센트럴 파크의 물벼룩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앵초꽃과 물벼룩은 한국에도 있는 미물이므로, 결국 황동규 시인은 원효만 못함을 자책할 것이다.


마종기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의 아들로서 미국 중동부에서 마취과 의사로 오랫동안 봉직하고 있는 의사이자 시인이다. 일전에 자신의 설득으로 미국에 와서 같이 살던 동생 마종환 씨가 의미 없이 총에 맞아 죽자 가슴이 찢어지게 한없이 울었다 한다. 그리고는 살인범을 용서해야 한다고 탄원했다고 한다. 마종기 시인과 황동규 시인은 막역한 친구 사이라 한다.

              


견딜 수 없는 가벼운 존재들 / 황동규


뉴욕 한국인 예술제에서 시 낭송을 하고

직장 여자 동료의 친구를 만났다.

무용 공부를 하는 엄마 학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후

“명숙이가 선생님 한 번 뵈라고 했어요.

모래 서울 갔다 와서

이 주일 후쯤 초대할께요.

남편도 술 좋아하니까

술대접 한번 하고 싶어요.

우리 사는 아파트는 개미집이지만.“

(개미는 얼마나 정교하게 집을 짓는가?)

쓰고 있는 둥근 테 잿빛 펠트 모자와

검소하지만 색 맞춘 남청색 옷이 잘 어울려

“정말 멋쟁이신데요.”했더니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거지예요.”


혹시 원효가 미친 척 당나라에 스며들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현은 어땠을까,

과연 원효가 원효로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시인 김광규가 편지를 보내왔다.

“이런 괴로운 시절에 망명가신 혀-ㅇ 이 부럽습니다.”

저런!

망자와 명자가 한자리에 묶여 연주하는 간결한

2중주를 

나를 위해 그는 더 짧게 편곡을 했군.

그는 생각했을까,

당나라로 떠나기 전-ㄴ 날 원효에게

왜 물그릇이 해골로 비쳤을까?

후에 그의 주특기가 되는 구걸승의 총본산 당나라를

그가 왜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을까?


멋대로 신나게 가볍게 살던 의사가

농장 노동자가 되어 죽는 쿤테라 소설 영화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를 보고

의사 마종기와 여주인공 칭찬을 하며

브로드웨이 32번로까지 걸어가 강서회관-ㄴ서 저녁을 먹고

(내 숙소에 가서 식사하고자 했으나 그는 한사코 거절,

“네가 만드는 밥 어떻게 먹니?”

5년째 미국 사는 동생도 언젠가 한 마디로 거절,

“형 음식 어떻게 먹습니까?”

그럼 내가 만드는 음식

나는 어떻게 먹지?)

펜 스테션 입구에서

오랜만에 상냥하게 웃는 여자 거지를 만나

동전-ㄴ 한 푼 깡통 속에 던져주고

(한국에는 거지가 없지,

미국은 ‘복지원’도 없는 삭막한 나라.

차-ㅁ 그 거지는 내가 짓는 음식을 먹을까?)

기차 타고 돌아와

방에 불을 둘이나 켜고

종기 보는 앞에서 손을 두 번 씻고

파 마늘을 썰고 고춧가루 깨소금 섞어

양념장 만들어 놓고

안주로 순두부를 끓인다.

동향인 자취방 밖에 보름달 환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반 갤런짜리 스카치를 2/3 비우고

지구의 회전도 약간 더 기울여놓고

김영태 욕도 좀 하고

(욕먹는 자는 복이 있나니

욕하는 자보다 늘 한 수 위이니라)

사이사이 카세트 틀어놓고 최진희의 노래를 합창하다가

(자취방 밖에는 보름달이 환하고)

30대 초반 중국인 여주인에게 불려 나가

조용하라는 주의를 받고

간신히 종기를 침대에 눕히고

(간신히 나를 눕혔다고 그는 말하리라)

나는 더 편하게 카페트 위에 자리 깔고 이불 덮고

큰대자로 누워 잠든 사이

꿈속에선 전라도와 경상도가 가볍게 뒤집히기도 하고

우리 탄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기도 했다.


아침이 오자 그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었다.

내 귀여운 술병들을

(종기 위해 새로 구색 갖춘 것들도 있었다),

술병들 앞에 조깅복 입고 수사처럼 서있는 나를,

구석에 흉하지 않게 감춰 논 내복들을,

그리곤 다시, 벽에 붙여 논 한국 지도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중년 사내를,

그 옆에 그가 좋아하는 마크 트웨인 사진을,

연출 지시대로 미소를 달았다 떼었다 하며

사진을 찍히다 나는 얼핏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이곳은

지옥인가, 연옥인가, 천옥인가?

혹은 (이건 단테도 몰랐으리라)

뉴욕인가?


텔레비에서 본 스웨덴의 일인용 감방 크기만한

자취방에서 증거물을 충분히 수집하고

(지난밤 그는 특히 술병들을 사진에 찍어

내 부모님과 아내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문지기처럼 문에 세우고 셔트를 눌러댔다

게으른 문지기처럼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리곤 마침 길 건너 서 있는 택시 운전-ㄴ사에게 부탁해서

둘이 같이 찍기도 했다.

둘 다 천옥의 간수들처럼 웃고

(혹은 당나라에서 잘못 들어온 원효들처럼 웃고,

30대 중국 여자에게 야단맞은

50대 들어선 사내들 같지 않게 웃고.)


아마 원효는 느낌으로 알았을 것이다.

당나라에서 제조해온 신라인들의 웃음을,

당진에서 배를 타기 전

그는 기호학 속에 당나라를 읽었을 것이다.

그날 밤 등잔 심지 돋구고 그는

해골에 고인 물마시고 다음날 토하는

결정적인 소설을 썼을 것이다.

(동굴 속 해골에 어떻게 빗물이 고이랴?)

사진을 찍고 나서 종기는 나를 몰고

바겐세일 레코드 상점을 찾아 맨해턴으로 나갔다.

지금이라면 원효도 지하철을 탔을 것이다.

우리처럼 빈 손이었을 것이다.

(거지의 마음 그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지하철을 내려 지상으로 올라와

헐렁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경주 거리보다 계속 직각으로 뚫려 바람이 세찬 장안 거리를

한없이 작고 가벼운 존재가 되어 걸었을 것이다.


후배가 놓고 간 앵초꽃이 물을 잘 받아 먹는다.

지나치게 주면 뱉아 버린다.

창가에는 놓을 곳이 없어

놓인 곳이 마침 식탁,

밥알도 몇 개 먹여주고

기름 뺀 우유도 몇 방울 먹여주었다.

광선이 모자란 것 같아 애기처럼 팔에 안고

커텐 사이로 햇빛도 조금 쪼여 주었다.

날이 지나며 앵초는 꽃과 잎을 하나씩 둘씩 떨어뜨렸다.

놀라워라, 남은 꽃과 잎은 생생했다.

떨어진 꽃과 잎을 종이 냅킨으로 쓸어내며

그 동안 나는 무엇을 떨어뜨렸나 생각했다.

혹시 나는 떨어뜨릴 거 제대로 떨어뜨리지 못하고

잎과 꽃을 잔뜩 달고 머리끝부터 마르는 그런 꽃이 아닌가?

손을 올려놓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가볍게 부서져 내리는?


뉴욕 사람들은 빨리 걷는다.

서울 사람들보다 빨리, 곁눈질 않고

곧바로 걷는다.

빨간불이 켜져도 틈만 있으면

주저없이 횡단한다.

보도에 잠시 혼자 남았다가

나도 빨간 신호들 켜진 거리를

서둘러 건너간다.


앞서 걷던 사내 하나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두 팔 벌리고 큰 소리로 떠든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는 건지,

무기 연기됐다는 건지,

심판관-ㄴ이 바뀌었다는 건지,

잘 식별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발걸음 늦추지 말고 지나가야 하는 건데

일순 발이 멈춰지곤 한다.

(원효는 당나라 거리에서 이렇게 멈칫하는

신라인의 발걸음을 미리 알았을 것이다.)

이번엔 옆에 국적 불명의 원효가 또 하나 서 있다!

서로 훌껏 보고 미소 짓는다.


다시 걷는다.

고층 건물이 끝나고 센트럴 공원이 나타난다.

산딸 나무와 개능금 나무들이 꽃을 미친 듯이 달고 있는

작은 언덕을 넘어 호수가로 가서 앉는다.

멀리서 오리 세 마리가 놀고 있을 뿐

하늘도 물도 땅도 한가한 오후

편안한 시야 속에 낯선 물고기 하나가 기슭으로 다가온다.

잔물결이 인다.

바로 눈앞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점 몇 개가 갑자기 튀어 흩어진다.

물벼룩들이군!

한 점이 달아나다 멈추고 꼼짝 않고 있다.

뒤돌아보는가, 두근대는 가슴으로, 다리 후들후들 떨며?

물벼룩 하나에도 심장이 뛰고,

그리고 자기만의 내면생활이 ....

햇빛이 수면엣 부서져 무지개 색으로 퍼진다.

한순간 허파 한 쌍과 마음 한 채가 몽땅

그 한 점에 깊숙이 빨려들었다가

확 놓여난다.


 

아래 사진들은 2010년 제가 뉴욕의 아들 집을 들렸다 찍은 것들입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의 호수, 여기 어딘가에서 물벼룩을 보았을 듯....
 
 

그 복잡한 도시 한 가운데 믿기지 않을만큼 한가로운 센트럴 파크의 풍경,

물개가 바위에 햇빛 쬐러 나온듯 남녀 가릴 것 없이 발개 벗었습니다.

한 나절을 저렇게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거미가 벌레를 잡 듯 적선하는 사람을 잡더군요.

 

32번가의 한국 상점가, 돈이 없지 없는 물건이 없습니다.

강서회관이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맨해탄을 크루즈하면서 사진 찍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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