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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 쓰레빠와 체벌
12/29/2010 22:12 댓글(8)   |  추천(4)

최근 학교의 체벌금지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한국에서는 갑론을박의 뜨거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체벌을 금지하되 교사의 지도능력 향상과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통해 학원질서를 바로 잡아 나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체벌금지는 학습질서의 붕괴와 막장교실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우리가 클 때의 체벌이란 당연한 것으로서 그 누구도 학생의 인권보호라는 명분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림자도 밟히지 않는다는 사도 하에 선생은 그들의 고유 권한으로서 체벌을 가했다. 당시의 체벌과 그 방법은 지금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손바닥과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기는 약과이고, 지휘봉 같은 막대기로 머리 때리기, 머리끼리 박치기 시키기, 그리고 따귀를 맞기도 다반사였다. 군사문화의 잔재로서 소위 빠따를 맞기도 하고, 어느 선생은 마치 쉐도우 복싱을 하듯이 멀쩡히 서 있는 학생에게 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아래의 시에서와 같이 선생이 손으로 때릴 경우 자신의 손이 아프면 신발이나 슬리퍼를 벗어 마구 구타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학생들에게 주는 모멸감은 대단한 것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신발로 뺨을 때린다는 것은 크나 큰 인격의 모독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물자가 귀해 쓰고 남은 폐타이어를 적당히 오려서 만든 슬리퍼를 실내화로 사용하였다. 폐타이어 슬리퍼란 고무의 재질이 툭툭하여 맞으면 엄청나게 아픈 구타의 무기와 같았다.


동네 똥개 한 마리가

우리집 마당에 와 똥을 싸놓곤 한다

오늘 마침 그 놈의 미주알이 막 벌어지는 순간에 나에게 들켜서

나는 신발 한 짝을 냅다 던졌다

보기 좋게 신발은 개를 벗어나

송글송글 몽오리를 키워가던 매화나무에 맞았다

애꿎은 매화 몽오리만 몇 개 떨어졌다

옆엣놈이 공책에 커다랗게 물건 하나를 그려놓고

선생 자지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킥킥 웃었다가

폐타이어로 만든 쓰레빠로

괜한 나만 뺨을 맞은 국민학교 적이 생각나

볼 붉은 매화가 얼마나 아팠을까 안쓰러웠다

나도 모름지기 국가에서 월급 받는 선생이 되었는데

오늘 개한테 배운 셈이다

신발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매화가 욕을 할 줄 안다면

저 개 같은 선생 자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에게 배운다', 복효근)


여기서 폐타이어 쓰레빠란 폭력을 상징하는 교사의 무기로서 학습질서의 유지와는 별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길이 남는 상처를 주게된다. 오죽하면 자신이 매화가 되어 당시의 선생을 지금도 욕하겠나? 이러한 방식의 체벌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계속하여 개가 똥을 마당에 싸고, 못된 학생이 못된 그림을 그려도 되는가? 어떠한 방식으로 마당의 청결을 유지하고 학습분위기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인가?


교실의 질서와 학습분위기의 유지에는 체벌 이외에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체벌금지 제도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문제학생의 적절한 격리제도, 유급, 정학 등의 학사제도, 학부모의 소환과 책임부여, 교내 폭력방지를 위한 경찰의 배치 등 종합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낯설기도 할뿐더러 많은 예산과 장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또한 교사의 지도능력 향상 내지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통한 학습분위기 고취는 매우 간접적인 방법으로서 많은 세월이 흘러야 가능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학생들의 인성교육만을 통해 학원질서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것은 매우 단순 치졸한 정책판단이다. 대안 없이 체벌을 금지하고 교육의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만 전가한다면 교육의 파행은 면치 못할 것이다. 체벌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정한 수준에서 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는 사랑의 매로 유지되어야 한다. 폐타이어 쓰레빠도 없어져야 하지만 춘화나 그리고 있는 못된 학생에겐 적절한 체벌과 징벌이 가해 져야 한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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