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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에 대한 몇 가지 생각
12/17/2010 04:12 댓글(6)   |  추천(4)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아직까지 청소년들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이면서도 매우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다. 거기다 불교와 동양사상까지를 아우르고 있어 심오하고 난해하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이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의 見性成佛의 맥락과 닿아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나는 중앙일보에 블로그를 만들면서 건방지게도 헤세의 ‘유리알 유희’라는 소설제목을 차용하였다. 어떤 사람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예수’라고 짓고는 그만큼의 역할을 못할까 무척 걱정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전혜린이라는 작가만큼 지성적으로 감성적으로 헤세에 심취해 있지도 못하다.


그러나 나는 ‘유리알 유희’의 소설내용이 주는 시사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다. 소설의 주요 내용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진리(이데아)를 찾기 위해 소위 난상토론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특정 주제를 마치 話頭와 같이 던지면, 여기에서 토론은 시작된다. 가령 어떤 별의 천문학적 위치, 바하의 푸가 주제, 또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경계와 분야를 넘나들며 토론하다보면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그 논리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리알이란  譜線에 그려진 音標에 해당되고, 전체의 악보는 당구장의 점수 계산기와 같다. 분야 간의 유사성을 일종의 상형문자인 형형색색의 유리구슬(glass bead)을 이용하여 악보에 표시하는 놀이가 유리알 유희(놀이)라 한다.


나 역시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 분야를 공부하면서 또는 교양으로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사실을 실감하였다. 모든 학문과 분야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리와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문들은 그 내용과 방법론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일찌감치 수상했던 폴 사뮤엘슨은 대학시절 MIT에 다니는 화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었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격의 없이 서로의 전공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토론했다 한다. 이 과정에서 사뮤엘슨은 화학의 ‘최적화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곧바로 경제학이론에 응용하였다. 이로서 그는 경제학의 기반을 다진 사람으로 영원히 인정받고 있다. 그 어느 누가 화학이 경제학에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예상했겠는가?


18 세기의 자유방임주의, 식민지이론, 진화론, 그리고 경제학의 ‘보이지 않는 손’ 등의 이론들은 서로 도움을 주면서 발전되었던 지식과 사상들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장했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자연과학이 세상살이에 해당하는 철학, 정치, 언어학과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칸딘스키는 음악과 회화의 유사성을 파악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나는 건축을 전공하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는 그림을 무척 잘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한 도안에도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테크니컬한 측면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인문학에 관심이 없고 시나 문학은 소닭 보듯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축은 종합적인 예술이고 학문이라고 강조해 준다. 때로는 물리학, 수학의 지식이 요구되지만 미학과 미술사, 문화, 종교, 역사, 그리고 철학과 환경 분야를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분야 간의 경계를 허물고 통달함으로서 구겐하임 박물관을 지은 폴게티처럼 되라고 강조한다.


요사이는 삼성이나 엘지 같은 대기업에서도 인문학을 공부한 학생들을 선호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시나 문학에 소양이 있는 학생들이 오히려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고 기업의 판매전략을 수립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겸비한 직원이 경쟁력이 있게 되었음을 반증한다 하겠다.


이렇듯 나는 블로그에서도 다양한 분들이 만나서 격의 없이 얘기를 하다보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 점을 서로 간에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사는 원리와 방식, 철학은 유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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