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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신자
12/16/2010 14:12 댓글(9)   |  추천(2)


이렇게 많은 나이에 불현듯 나는 왜 종교가 없는가, 종교를 가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처량한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서는 젊어서 수없이 고뇌하고 열병을 앓고 난 후 독실한 신자가 되었거나, 어떠한 방향으로든 종교에 관한 문제를 교통정리하고 있을 나이에 말이다.


사실 나는 종교를 가지지 못할 여건이나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비라 자칭하는 유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내가 어렸을 때 가풍을 이어나가고자 했을지도 모를 조부와 부친께서는 이미 작고하셨다. 이후 나는 외국인의 선교사업이 활발했던 고향 마을에서 일찌감치 기독교의 문화에 노출되어 성장하였다. 봄가을 없이 소풍을 다녔던 사찰에서 스님을 만나고 염불을 듣는 일도 흔한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와의 인연은 질기고 긴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의 침례교회에서 수많은 찬송가를 배웠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등이 그것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가톨릭 계통의 대학에서 신부님들의 강의를 듣고, 성모 마리아상을 아침저녁으로 조우하면서 공부했다.


결혼할 당시 내 각시가 될 사람은 전통적인 가톨릭 집안 출신으로서 유아영세를 받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신부님의 주례 하에 명동성당에서 가톨릭 방식으로 결혼식을 치뤘다. 당시 주례를 담당한 신부님께서는 결혼 이후 반드시 신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나에게 요구하셨다. 3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여러 동네를 옮겨 다니면서 많은 성당을 다녔다. 나는 성당에 가면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내의 옆자리에 내내 앉아 있지만 성금도 안 내고 성체를 받아먹지 못한다. 아직까지 영세명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아내의 집안은 2남 3녀의 5형제이다. 2명의 며느리와 2명의 사위는 출신성분과는 관계없이 각각 결혼하자마자 이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돌림병이 돈 것처럼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까 5형제 부부 10명 중 나만 신자가 못되고 길 잃은 양으로 남게 된 셈이다. 매년마다 장인어른의 기일에 모여 연도를 하게 되면 모두 구성지게 연도를 합창하지만 나만 어색한 꼴이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는 교리반을 가동하여 예비신자들을 교육하고 영세를 주고 있다. 나는 신심이 없이 집사람을 따라 성당을 다니는 나 자신이 여간 당혹스런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 예비신자 교육에는 반드시 등록하라는 사방의 요구에는 더욱 난처해진다.


나는 왜 무엇을 믿지 못하고 종교인이 되지 못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아직까지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나에게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영적인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무엇이든 연역적이고 귀납적으로 따지려 드는 나의 무신론적인 기질이 상승작용을 했을 것으로 본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어는 ‘공포와 전율’이라는 책에서 논리적이며 윤리적인 것을 뛰어넘어 공포와 전율에 찬 개개인의 길이 신앙의 본령이라고 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이 뒤늦게 얻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받고 직면하였던 무섭고 떨리는 심리상태를 묘사함으로써 신앙의 단독성과 비합리성을 밝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윤리적으로 살인행위에 해당하고 인간적으로 몹시 고통스런 일이지만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고자 하였다.


키에르케고어는 믿음이란 열정(passion)이 필요한 바, 이러한 열정이란 단순히 이해할 수 없으며 각자의 외로운 경험에 의해 얻을 수밖에 없다 하였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믿음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배경과 요인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모든 것을 양도하고 포기하더라도 현세에 온전히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부조리한 힘에 대한 확신’이라 한다. 또 하나는 현재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내세에 무한하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라고 하였다.


나는 지난날들을 회고해 보건대 하나님을 믿어 무언가 희생한 대가로 현세에서 보상을 받거나, 내세에서 구원을 통해 천국으로 인도받겠다는 무섭고 떨리는 실존적인 상황을 맞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따라서 은유와 역설로 가득 찬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피조물 인간의 원죄설은 자가당착이고, 사람의 모습인 예수의 부활은 허무맹랑하고, 더욱이 보편적이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국한되었던 구약의 내용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요즈음은 정말로 시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누구이며, 삶의 목적은 무엇이고,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등의 쓸쓸하지만, 제법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졌다. 내가 다음 주부터 교리반에 들어가서 신자가 되겠다고 하면, 아내는 평생 밥하고 빨래해 준 보람이 있다는 생각에 감격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못 믿고, 안 믿는 나를 위해 부디 충만한 축복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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