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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과 버클리
12/07/2010 18:12 댓글(1)   |  추천(4)

혹시 이연실이라는 가수를 아시나요? 연실이 하면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을 연상할 수도 있겠으나, 1970년대에 한국의 존바에즈라 불렸던 가수 말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연실은  내가 비틀즈보다 훨씬 더 좋아했던 가수로서 나의 개인적인 가요문화에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수입니다.


1974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에는 학기가 시작되기만 하면 위수령이다, 긴급조치다 해서 대학의 문을 닫았던 때입니다. 신촌의 하숙방에서 이불을 깔고 누웠는데, 소낙비가 때 아니게 엄청난 우레와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지요. 바로 그때 ‘한밤의 음악편지’류의 프로에서 이연실의 ‘소낙비’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빠른 박자에 카랑카랑하면서도 청아한 목소리가 어울려진 그 노래에 나는 엄청나게 소름이 돋는 전율을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실제의 소낙비가 노래의 배경 음악이 된 것은 물론이구요. 어떻게 저렇도록 남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음색의 목소리를 가졌을까?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찔레꽃’을 들으면 무명저고리의 우리 어머니가 찔레꽃 언덕을 걸어오시는 듯 했습니다. ‘목로주점’의 마지막 후렴 부분을 계속 부르면서 술주정도 많이 했지요. ‘스텐카라친’을 듣고 있노라면 장엄하게 펼쳐진 러시아의 평원과 볼가강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노래에 해당되는 ‘그대’라는 노래도 좋았습니다. 어쩌다 노래방에서 도우미 아줌마를 만나 듀엣을 하면, 그 아줌마가 마치 ‘바람 부는 언덕에서 마주친, 평온한 휴식을 줄 것만 같은’ 그런 그대 같았습니다.


내가 밥딜런이 부르는 ‘소낙비’의 원곡(A Hard Rain's A Gonna Fall)을 듣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입니다. 밥딜런이 오히려 이연실 노래를 번안, 각색하여 부르듯 했으나, 이 역시 즐거움을 주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반쯤 술이 깬 듯 목울대가 튀어나올 듯이 감정을 한껏 넣어서 부르는 히피 분위기의 노래는 더욱 감칠맛이 났습니다. 노래의 도입부는 나즈막히 조용하게 시작하여 점차 힘을 더해 가는 목소리는 가히 압권이었지요. 소낙비란 냉전시대의 있을지도 모를 미사일 폭격을 의미한다 했습니다. 포탄이 무수히 소낙비처럼 떨어지는데 너는 도대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았고, 들었고, 만났는가라는 것이 가사의 내용이지요. 한마디로 반전평화의 노래입니다. 이후 밥딜런은 가수로서 히피문화와 학생들의 반전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의 만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버클리라는 대학도시를 자주 가게 된 것은 우리 집 두 아이가 모두 그곳의 대학에 다니고서 부터입니다. 때로는 김밥을 갖다 주러, 때로는 이삿짐을 날러주러 갔지요. 버클리는 무엇인지 모를 자유스럽고 낭만적이며 데카당스한 분위기의 도시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대학이 1960년대 초의 자유언론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 시작된 곳이며, 그 당시 싹트기 시작한 히피문화의 본 고장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의 남쪽 문, 셔터게이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텔레그라프 거리에는 교수인지 학생인지, 또는 거지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자유분방하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거리에는 악세사리 노점상이 이어져 있고, 벽에 기대어 노래하고 책을 읽는 거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케쥬얼숍, 서점, 스포츠용품점, 그리고 여러 나라의 음식점들이 구색을 맞추어 들어서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온화한 그곳의 햇볕만큼이나 낭만스럽지요.


나는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혹시 밥딜런을 만날 수 있을까 착각을 합니다. 그러면 자동연상에 의해 이연실의 소낙비라는 노래도 생각나지요. 버클리에서도 머리에 떠오르는 이연실은 참으로 나와 인연이 있는 가수입니다. 최근 이연실씨의 근황을 알아보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되었습니다. 올해가 환갑이었을 그녀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행복했으면 하는 착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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