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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이 떠중이
12/06/2018 16:12 댓글(2)   |  추천(6)


나는 고기 어자를 성으로 쓰는 어씨와의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가 근무하던 연구원에서 어박사로 통했다. 성격이 호방하고 술도 잘 먹는 호인이었다.


그는 ROTC를 하고 장교로 제대했다. 그의 계급이 중위였을 때 그는 당연히 어중위로 불렸다 한다. 그러나 짓굳은 사람들은 그를 어중이라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한 발 더 나가 떠중이라고 했다 한다.

"어중이가 오늘은 어디 갔나?"하면 "떠중이는 나도 못봤는데요"라는 식이었다 한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과꽃', '꽃밭에서'라는 노래를 작사한 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이 성씨를 어씨로 가지고 있으면서 생겼던 해프닝을 유모스럽게 수필로 썼다. 유모도 천진난만하다.


어씨지탄(魚氏之嘆) / 어효선

 

내가 성씨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성이 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학 시절에 유학자 소석 선생님의 서재엘 드나들 때 받은 감화가 나로 하여금 현대 청년답지 않은 노청년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결혼할 적에도 상대편 성의 본관을 캐묻고, 반상(班常)까지 따져서 주위 사람들의 핀잔을 무수히 받았다.


내 성이 희성 중에도 고기 어() 자라, 옛날 보통 학교 적부터 '사까니', '물고기'니 하는 별명을 들어왔다. 광복 후 동창회 명부를 뒤적이다가 문득 성씨를 수집해 볼 생각이 들어, 직원록 같은 것을 유심히 보고 일일이 가나다순으로 기록을 했었다. 막상 모아 보니 이, , , , , 박의 6성이 순 조선 성이라는데, 이 밖에는 웬게 그리 많은지 한 200종 가깝게 되었다.


어느 날 고서점엘 들렀다가 조선성씨고라는 4.6배판의 두툼한 책을 발견하여, 얼른 뽑아 훑어보니 그야말로 만성이라, 글자마다 성인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일자 일씨에 뼈 골자 골씨까지 있음에야! 그런데 이씨나. 김씨는 흔하다 하여 귀히 여기지 않을 양이면, 이런 희성은 적어도 천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거늘, 사공(司空)씨는 '뱃사공', ()씨는 '짱꼴래'란 별명을 들으니 딱한 노릇이다.


예전에 상인은 성도 없었다는데, 요즘 다방이나 주석에서 자기 명함을 마치 광고지 돌리듯 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으레 명함을 교환하고 통성명을 하는 게 첫인사요 예의임에 틀림없으나, 나는 고기 어자인 내 성을 대기가 싫어 영 친구를 사귀려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다. 논어에 "익자삼우 손자삼우(益者三友 損者三友)"라고 했지만 사람은 사람을 많이 아는 게 큰 재산임을 여러모로 느끼곤 한다. 1.4 후퇴 전까지는 입에도 못 대던 술을 좋아 마시게 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대견하여 나도 남처럼 통성명을 하게 되었으니 피난의 소득이요, 전쟁이 준 선물이다.

"난 이 아무게입니다."

", 어효선이올시다."

"앞으로 많이"

"네 저 역시."

"그런데 참 희성이시군요?"

", 좀 드문 성입니다."


여기 까지 좋은데, 여러 차례 만나고 혹 술잔이라도 나누게 되면, 으레 '물고기' '금붕어'니 하고 농담을 꺼낸다. 그나 그 뿐인가, 술안주로 생선이 상에 오르고 보면, 몇 촌간이나 되느냐고 촌수를 따지려들고 나중에는 '동족간의 상잔비극이 벌어졌노라'고들 가가대소를 한다. 여기까지는 또 괜찮다. 안주가 떨어지고 취흥이 겨워지면, 그냥 뜯어먹자고 들이 덤비는 것을 어찌하랴, 나는 할 수 없이 옷을 벗는 체하고 도마와 칼을 가져오라고 응수한다. 좌중은 다시 폭소를 터뜨리고 나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술자리에서는 내 성이 화제가 되니 영광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리 숙친하지 않은 분이 내게 편지를 보내오는 날이면 으레 노씨로 변성을 해 놓는 데는 딱 질색이다. 만나면 분명히 어씨라고 부르면서 편지엔 왜 노씨라고 쓰는지 도무지 그 심사를 모르겠다. 나는 편지 봉투를 든 채 고소를 금치 못하다가 나중엔 은근히 불쾌하기까지 하여진다. 그러나 한문투에 어로지오(魚魯之誤)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어자를 노자로 잘못 쓰는 일은 예사인 성 싶어 자위하고 만다. 편지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막역한 사이에는 어자를 쓰는 대신 숫제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 놓으니, 사람을 이렇게 놀릴 수가 있단 말인가? 참 말 못할 노릇이다.


언젠가 어느 주석에서 유머를 잘하는 Y선생님이 별안간 깔깔 웃으시며

"어유! 어유!"하고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재우쳐 물으니 "네 옆에 유 선생이 계시지 않느냐"고 하여 워낙 웃기 잘하는 유 선생님도 나도 한바탕 웃었다. 이렇게 어자는 뜻도 그러려니와 음도 말썽이라 '어물어물한다'느니 '어처구니없다'느니 '어수선하다'느니 하여 종시 웃음거리가 된다.


Y 선생님은 희성이 빚어낸 난센스 하나를 소개하셨다. 어느 주석에 5,6 인 동지가 빙 둘러 앉았는데 좌석 배치가 공교롭게 되어 조(), (), (), (), ()씨의 차례로 자리를 잡은지라, 좌중 1인이 이들을 둘러보며, "조지로구나(曺池魯具羅)"하여 웃겼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허리를 못 펴고 웃다가 나는 사레까지 들려서 쩔쩔맸다.


뜻과 음이 말썽인 내 성은 또 글자까지 고약하다. 광복 직후 모 신문에다 이름을 한글로 써서 투고를 했더니, 덜컥 "이효선"이로 발표가 되었다. 이러고 보니 나는 노씨로, 또 이씨로, 두 번 변성을 한 셈이 아닌가. 한참 들여다보다가 홧김에 점하나를 모조리 떼고 보니 '이호신'이 되었다. 마침 좋은 펜네임을 얻었다고 그냥 쓰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글 간소화를 미리 단행한 셈이니 이것도 선견지명이랄까? 어쨌든 다행한 일이다. Y 선생님은 내 서재를 '어항'이라고 명명하셨다. 딴은 물고기가 기거하는 방이니 그럴듯한 이름이기도 하여 즐겨 당호를 쓰고 있다.


그러나 속담에 세상모르고 사는 이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이르듯이, 나는 제 자신이 어항 속 물고기처럼 생각되는 때가 많다. 자칭 동요를 쓴단 지가 여러 해포 되었어도, 어린이들이 즐겨 부를 노래 한 편 못 써낸 채 올해도 저물어 가니, 어찌 희성을 탄하고만 있을까 보냐!

돌아보면, 반생을 중일 전쟁이니, 태평양 전쟁이니, 동란이니, 후퇴니 하는 실로 어수선한 세상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벙벙하게 지내면서, 어물어물 나이만 먹었으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어허! 이 어찌 어리석은 자, 갑오년을 보내는 어씨 나만의 탄식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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