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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07/19/2017 10:07 댓글(2)   |  추천(4)


분꽃 / 박규환



늦여름에서 늦가을에 이르도록 분꽃은 핀다. 제법 화단의 어엿한 자리를 차지할 만치 그 지체가 높을 것도 없어서 분꽃은 하냥 장독대의 가장자리거나 아니면 담벼락 아래 남몰래 자란다.


그러나 척박한 토양이 그 성장과는 상관이 없는 듯 잡초처럼 건장해서 노동에 시달린 늙은 아낙네의 손가락처럼 튀어나온 마디마디에서 뻗은 가지들이 아늑한 소나무처럼 적은 땅을 덮고 좁은 하늘을 가리면 거기 빨갛고 노란 화변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피어나는 꽃, 그러나 아무도 귀히 여기지도 않는 가련한 꽃, 그게 바로 분꽃인 것이다.


피기를 가을에 피니까 가을꽃의 족속임에는 틀림이 없으련만 가을꽃을 헤아리는 선비의 머릿속에 냉큼 떠오르지도 않는, 하찮은 초화에 지나지 않다. 글라디올러스니 칸나니 나중엔 샐비어까지, 그 빛깔이 처절히 불볕나는 가을 하늘 아래 조화를 이루어 가을꽃하면 으레 저희들인 양 생각할 테지만 저녁 건들마에 지천으로 피었다 아침 햇볕에 시들어 버리는 계절감에다 그 조화가 어찌 앞의 꽃들에 비겨 뒤질까보랴.


오후 네 시가 되면 일제히 하늘을 향해 귀대歸隊의 나팔을 불기 위해 분꽃은 아침나절부터 말없이 봉우리를 키운다. 아침 아홉 시쯤의 분꽃 봉우리는 선비의 휴대용 모필毛筆처럼 작고 가늘어서 저게 어느새 크게 부풀어 오후 네 시의 나팔을 불게 될 것인가. 시답잖은 생각이 들지만 어느새 피어야 할 시각이면 어김없이 부풀고 터져서 일제히 나팔을 불어대는 것이다. 달리아의 농염과 코스모스의 청초가 다 같이 가을을 무르익게 하는 가운데 푸른 잎새와 줄기에 묻혀 화로 속에 콩이 튀듯 피어나는 오후 네 시의 기적에는 그저 놀라움이 앞선다.


지난봄의 일, 마당가의 손바닥만 한 화단에 잡초를 뽑다말고 거기 자생한 분꽃의 어린 싹을 하마터면 뽑아 버릴 뻔 했는데 어릴 때의 일을 생각하고 그대로 두었던 것이 늦봄에서 여름을 나는 동안 방석을 덮어 쓴 소나무처럼 건강히 자라서는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밤하늘에 뿌려진 별가루처럼 피었다간 지고 또 감았다 다시 뜨는 눈인 양, 밤과 낮 세월을 재는 동안 가을은 초부樵夫가 갈대밭을 걸어들 듯 처음엔 허리께였던 것이 다음엔 가슴께, 그리고, 이젠 머리만 보일락 말락 깊을 대로 깊었다.


분꽃이 눈뜨는 게 사람의 잠자는 시간과 상반相反됨은 별을 흉내 내고자 함일지도 모른다. 만뢰萬? 잠들어 보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밤하늘의 별과 뜰아래 분꽃들은 서로 다정해 밀담을 나누다가 아침 해와 함께 잠시 갈라져 다시 오는 밤을 기약하는 것일까? 별은 하늘의 꽃, 분꽃은 땅 위의 별, 아니 어느 것이 별이고 어느 것이 꽃이랴! 별과 꽃이 하나이지 둘이 아님은 이미 태초의 약속임에 지나지 않다.


분꽃의 잠자는 시간이 사람과 다르듯이 삶의 취향이 또한 다르다. 반도半島의 백의白衣가 칠레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찾아 건너기 전,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이 땅의 잡초 속에 뿌리를 내렸으니 저 넓고 푸른 바다를 무슨 수로 건너 왔을까? 그 씨앗이 검은 콩이나 다를 바 없어 스페인 해적의 옷깃에 묻어왔을 코스모스의 씨앗처럼 붙임성이 없고, 관모冠毛를 단 민들레의 씨앗이 아니어서 바람이 어찌 예까지 날라다 주었으랴! 멕시코에 사신使臣다녀 온 문익점文益漸이 있었단 이야길 듣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그 콩의 분가루가 얼굴에 흰 얼룩을 남겼을 아련히 먼 옛날에 이미 이곳에 이주해 왔음이 분명한데 혹시나 가을 밤, 별과의 소요逍遙길이 잘못되어 여기서 날이 밝자 돌아가지 못한 채 그냥 이곳에 영주永住의 차비를 마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꽃은 한 뿌리에서 자랐으면서도 노랑, 빨강, 분홍빛 또는 반마斑馬처럼 얼룩무늬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운다. 한 어미가 낳은 강아지의 털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렸을 적, 장독대에 깔린 모양새 예쁜 돌을 줍다가 거기 가장자리에 서있는 분꽃의 꽃 나팔을 뽑으면 기다란 화예花?를 남긴 채 뽑혀 나오는데 이건 어린 입술에도 불기엔 너무 작은 나팔이었다. 주은 돌을 절굿공이로 꽃을 모아 짓이겨 찧으면 빨간 꽃도 노란 꽃도 분홍 꽃도 다 같이 검은 떡이 되던 것이 이상했다. 우리는 떡을 나누는 소꿉놀이로 선린善隣의 정을 두텁게 했었다.


꽃이 시들고 사흘 쯤 지나면 시들은 꽃 밑에서 파란 콩이 도드라지는데 처음엔 파란 콩이지만 차차 검은 줄무늬가 일고 나중은 칠흑의 검은 콩이 되는데 만지면 손끝을 간질이는 얽은 콩이다.


우리는 이 검은 열매를 따서 빈 성냥 곽에 가득히 담아선 햇볕에 말렸다가 다음날 검은 겉껍질을 벗기면 엷은 속껍질 속은 고형固形의 분 덩어리인데 갈면 분가루가 되고 이걸 소꿉놀이 소녀의 얼굴에 발라놓고 모두들 웃고 떠들며 좋아했다. 당시 유일의 화장품이던 박가분朴家紛은 요즘 유행하는 정제錠劑의 아스피린 방사한 게 여섯 알들이 한 곽이었는데 이것 혹시 이 분꽃 열매가 원료는 아니었을까. 하긴 밀가루도 열매에서 나오는 가루이긴 다를 바 없지만….


이웃집 힘이 황소 같다던 대동정센, 저희 어머니 시집올 때 두엄자리에서 닭을 뜯었다고 우겨대서 웃음거리가 되었다던 그 대동정센, 지독한 근시여서 무엇이거나 눈앞 한치 앞에 가져다대고 찡그리고 보아야 알아보던 그, 무명베인지 삼베인지 만져만 보아도 알고도 남을 것을 바짝 눈앞에 들이대고서야 겨우 알아내던 그 대동정센, 그의 딸 윤임이는 나의 소꿉놀이 친구였지만 그 옛 친구와 헤어진 지도 60년이 가깝다. 시집갈 때를 겨냥하고 이 분꽃 열매를 열심히 곽 속에 따 모았던 윤임이, 지금은 어디서 사는 노파일까, 혹은 이미 땅속에 묻혔을까? 내 기억의 눈엔 아직도 소녀일 뿐인데….


우리 집 뜰의 한 떨기 분꽃나무, 이른 봄에 뽑아 없앴던들 나에게 추억의 계절이라 하여 이러한 옛 생각이 부질없지 않고…. 소슬한 갈바람 속, 분꽃에 묻어오는 철없던 시절이 회소回蘇로만도 과시 분꽃은 아름다운 가을꽃임에 틀림없다.



(우리 집 분꽃)


아래는 우리 집 패티오에 그릴처럼 뜨거운 햇볓을 이기고 피어 있는 분꽃입니다. 작년 겨울 동지섣달 동대문 시장의 종묘상에 가서 씨를 사다 뿌린 것이 인연으로 피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잠이 깨어 패티오에 나가면 채 날이 새기도 전의 박명 속에 그 옛날의 분꽃으로 피어 나를 반기고 있습니다. 하도 꽃이 질박하고 청초하여 한참동안씩 정신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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