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시냇가에 심은 나무
  • 느티나무 (greencreek)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고
09/22/2018 05:09 댓글(12)   |  추천(10)



 내가 엊그제 약 보름동안 머물려고 시카고에 다시 온 것은 딸래미가 2주일간 동남 아시아로 출장을 가기 때문이었다. 딸이 없는 동안 이 집의 식사 준비와 국민하교 6학년생인 손주가 아침에 학교 갈 때 신경쓰는 것 이외에 딱히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책을 몇 권 들고 왔다. 손녀 에니카는 하이스쿨 주니어이기때문에 자기 차를 운전해서 다니고 있다. 그 책중의 하나인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으며, 피닠스 공항에서도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읽었었는데 마침내 어제 오후에 다 읽었다.


 <깊은 강>의 마지막 귀절은 이랬다.

"당신의 친구, 크게 다친 일본인은...." 하고 침을 삼키고 말했다.

"위독하답니다. 한 시간쯤 전부터 상태가 급변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의 여운이 매우 깊었다. 책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속에 나를 대비해서 읽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이 점심을 먹고 조금 전에 딸래미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으로 떠났고, 나는 시카고의 바람부는 오후 날씨가 좋아서 거실의 창문을 열어 놓고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앉아 읽고 있었다. 다 읽은 책을 가슴위로 얹고 눈을 감았다. 가슴이 싸악 미어지는데 새들의 노래소리와 함께 상큼한 바람이 창을 통해 불어왔다. 한참을 그런 자세로 있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기때문이다. 집에서 커피를 내릴까? 아님 집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서 마실까? 하다가 집을 나섰다.






 밖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내 감정과 달리 시카고의 금요일 오후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집으로 걸어오는데 길 좌우로 짙은 녹색잎을 달고 있는 고목들이 장관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기전에 집 앞의 계단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면서 고목의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다가 잎새가 땅 위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해보았다. 지금부터는 책을 읽은 후에 무언가를 남겨 두자고.


 이제는 책을 읽을 때 돋보기를 써야 글의 활자가 잘 보인다. 게다가 돌아서면 내가 읽은 책이 무엇이었더라? 하면서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다반사이다. 게다가 나는 책을 읽은 후에 쓰는 '독후감'이란 것을 잘 쓸 줄 모른다. 하지만 읽었다는 것을 남겨두고 싶었다. 하여 나는 작품해설에 표현해 놓은 요점을 옮겨 놓는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기억을 위해서.





 나는 힌두교도가 아니다. 난해하고 심오한 그 교의의 내용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 안에는 어머니 갠지스 강과 바라나시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어딘가에 있다. 내가 바라나시에 간 것은, 우선 그 욕망의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략)

 피부병 같은 벽과 벽 사이를 더듬으며 걷고 있을 때, 홀연히 마을의 출구가 열렸다. 그 출구 앞에 갠지스 강이 있었다. 사막처럼 드넓은 하얀 강바닥 건너편에 야자나무가 드둔드문 늘어서고, 이쪽으로는 넓고 완만하게 어머니 젖가슴처럼 풍요로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처럼 유유히 큰 강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어디가 상류이고 하류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한낮의 갠지스 강은 고요하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으나, 그 때 나는 햇살에 빛나는 유유한 강 저편에 작게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작은 배를 상상하고 나도 언젠가 죽을 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엔도 슈사쿠-


 1993년에 세상에 나온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가 1971년 인도를 여행하고 나서 쓴 것이며, '깊은 강'은 인도의 성스러운 어머니 강이라고 알려져 있는 갠지스 강이다. 인도중의 인도라고 할 만한 바라나시는 바루나 강과 아시 강이라는 두 강과, 본류인 갠지스 강변에 있다. 이 두 강이 만나는 장소는 힌두교도에게 성스런 땅이라 여겨지고 있으며, 부유한 사람은 기차나 자동차로, 가난한 사람은 도보로 이 동네까지 순례를 떠나온다. 그들의 신앙에 따르면 갠지스 강의 성스런 물에 몸을 담글 때는 모든 죄가 씻기고, 죽음이 찾아 왔을 때 그 시신의 재를 강에 흘려 보내면 윤회로부터 해방된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그의 대표작으로 <침묵>이 있지만,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의 최고작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라고들 한다. 작가의 나이 일흔에 발표한 이 작품은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달성해 낸 값진 성과라는 점에서 엔도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 속에 나의 대부분이 삽입되어 있음은 분명하다"고 작가 자신이 썼듯이, <깊은 강>에는 그의 개인적, 전기적인 사실들이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그리고 병상에 있을 때 경험한 구관조의 죽음, <테레즈 데케이루>에 대한 심취와 프랑스 랑드 지방 여행 등등.


모두 1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는 주요 인물들이 제각기 이름을 달고 등장한다.

          1장       이소베의 경우

          2장       설명회

          3장       미쓰코의 경우

          4장       누마다의 경우

          5장       기구치의 경우

          6장       강변 동네

          7장       여신

          8장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9장       강

         10장      오쓰의 경우

         11장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12장      환생

         13장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오쓰를 제외한 네 사람은 모두 우연히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나 함께 행동하면서 차츰 서로의 사연과 속내를 조금 씩 알게 된다.

 극히 인상적인 이 소설의 서두는 낭창낭창한 군고구마 장수의 목소리와 함께 의사로부터 아내의 암 선고를 듣는 이소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을 겪고, 반드시 환생하겠다는 말을 남긴 아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윤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소베.

 대학 시절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유혹했다가 버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쓰코. 그녀는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가서 신학 공부중인 오쓰를 만난다. 이혼 후에 그녀는 한 친구로부터 신부가 된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찾아간다. 오쓰를 무시하면서도 내내 그의 존재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미쓰코의 복잡한 심경과 길고도 먼 심리적 여정을 거친 내면의 변화를 눈여겨 볼 만 하다.

 누마다는 동화 작가로, 자신이 병으로 죽을 고비를 맞고 있을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구관조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기구치는 태평양 전쟁 때 미얀마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오쓰. 그는 대학 시절, 똑똑한 미모의 여학생 미쓰코에게 희롱당한 아픈 상처를 안은 채 신학도의 길을 선택한다. 어설프고 안타까울 정도로 고집스러운 그의 순진 무구함과 신을 향한 구도의 자세는 <깊은 강>의 여느 등장인물들보다도 마음에 깊숙이 새겨진다.


 지난해 여름 초입, 나는 엔도의 흔적을 좇아 나가사키로 향했다. 그의 문학관은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소토메 지역 '석양의 언덕'에 납작이 엎드려 있었다. 늦은 오후에 들러 짧았던 첫 방문이 못내 아쉬워 다음날 일찍 다시 일정을 잡았는데, 운 좋게 얻어 탄 엔도 문학관 순회 관광버스는 단 한 사람의 이방인을 싣고 출발했다. 고급 리무진 버스에는 운전사와 안내 아가씨 그리고 나. 그날은 간간이 소나기가 오락가락했다. 희뿌연 빗줄기속에 유서 깊은 기리스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소토메 마을은 고즈넉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었다. 그 한 귀퉁이 작은 돌에 새겨진 엔도의 글 귀가 한참 동안 내 발길을 붙잡았다.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침묵의 비(碑)-


2007.. 가을 유숙자


*** 유숙자는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번역하였슴***




2018. 9. 22(토)

시카고에서

느티나무










책 소개/ 詩 혹은 수필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