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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타도? 시위하다 하루종일 맞아 본 적 있나요?
05/01/2019 06:05 댓글(0)   |  추천(27)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있었다. 어느 날 등굣길에 교문 앞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됐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경찰관이 그저 수상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나 길에 세워놓고 가방을 뒤지곤 했다.


경찰관은 대학원생의 가방에서 ‘프랑스혁명사’를 발견하고 연행하려 했다. 대학원생은 서양사 공부에 필요한 책이고, 프랑스혁명은 근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관의 눈에는 “프랑스”는 들어오지 않고 “혁명”이라는 단어만 불온하게 보였다.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실화이다. 아내에게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가 집권하던 때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이 느닷없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며칠 지나면 실종된 학생들이 남산이나 남영동으로 끌려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남산이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남영동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근무했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그로부터 한두달 쯤 지나면 그럴듯한 사진과 조직도와 함께 좌경·용공학생을 검거했다는 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좌경·용공이란 지금으로 치면 종북과 비슷한 말이다. “민주주의의 아버지”와 그의 절친들이 끼리끼리 권력을 나눠 먹던 시기의 일이다.


엄혹한 시대에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는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감시가 엄중했기 때문에 공개적인 시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대개 미리 정한 시각에 갑자기 거리나 건물을 차지하고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진압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무법천지는 그 다음부터였다. 경찰은 시위대를 경찰서로 연행하자마자 불문곡직하고 일단 팼다. 한나절 또는 하루 종일 두들겨 맞아 넋이 나갈 때쯤 되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시위의 동기는 무엇인지 등을 묻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마구 때려서 기선을 제압한 뒤 조사를 시작한다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었다.


지금은 탈세나 성매매 혐의를 받는 유흥업소 업주도 인권을 보호받는 세상으로 진화했지만 그 때는 경찰에게 인권을 주장하면 매를 벌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이 이런 야만적인 실상을 알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이 통제됐고, SNS라는 것은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만약 사실을 알리려는 언론이 있었다면? 말 안 듣는 기자는 구타와 고문의 대상이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독재란 이런 것이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가 판·검사 되려고 법전을 달달 외우던 때 도서관 밖에서 벌어졌던 이런 일이 독재라는 것이다.


1987년 박종철이 고문으로 숨지고 6월항쟁으로 치닫던 시기, 당시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었던 강만길 교수는 어느 날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이 배워야 할 것이 강의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존경스러운 가르침 덕분에 학생들은 학점 걱정하지 않고 마음 놓고 독재와 맞장을 떴다.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한 발자국만 나갔어도 독재의 살풍경을 볼 수 있었을텐데, 아무래도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한 것 같다.



CBS노컷뉴스 조근호 기자 chokeunho21@cbs.co.kr

원문보기:https://www.nocutnews.co.kr/news/5143849

이미지출처/이 하 작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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