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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上이 시끄러운 것은
03/12/2019 06:03 댓글(0)   |  추천(20)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인성(人性)이 잘못된 자(者)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추니, 병우와 같은 최고의 지식을 습득한 자(者)들이 지위를 남용하거나 사람을

업신여기는 품성(品性)까지 지니고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된다.


사람에게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실수와 과오는 있게 마련이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사람은 없는 반면 그것을 정의로 포장해 목소리를

높이는 자(者)들이 많기 때문에 사회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좌(左), 우(右) 편을 갈라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두개의 정의(正義)가 부딪혀 전쟁을 하듯 자신의 정의를 찾아 헤쳐모여를 반복하며

좌(左), 우(右) 양극단(兩極端)에서 피터지는 싸움질을 하고 있다.


그 싸움 속에는 타협(妥協)과 조정(調整)이 있고 변절(變節)도 있지만,

타협과 조정은 주체(主體)의 상실(喪失)과 굴종(屈從)의 의미를 줄 수 있으며,

변절자들이 추하게 보이는 것도 타협과 조정의 명목으로 변절을 정당화시켜서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삶에서 신념을 지키고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무는 강한 바람에 맞서 쓰러지지 않을려고 노력하지만 때론 뿌리채 뽑혀지듯이

외력(外力)에 굴(屈)하지 않고 신념대로 사는 것은 세상을 뒤집기만큼 어렵다.


타협과 조정의 명목으로 변절된 굴욕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굴욕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목숨도 내것이 아니라는 정신으로 무장하면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두려움이 없으면 잃을 게 없고, 잃을 것이 없으면 자신의 신념대로 살 수 있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비워야 한다.

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계획된 허무에 불과하지만, 냉철하게 시대를 보고

마음을 비운다면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세상 또한 평온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순환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理致)이고 섭리(攝理)라고 하지만

지조(志操)와 절개(節槪)를 초개(草芥)처럼 여겨 변절(變節)한 자(者)들이 이치(理致)와

섭리(攝理)를 말하며 변절을 정당화시키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저지른 실수와 과오에 대한 반성, 자신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이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해 하는 사람은 없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교활한 인간말종(人間末種)들이

많은 것이 세상(世上)을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다.



오욕(五慾): 사람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


칠정(七情): 사람이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欲)




Mt.Whit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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